“갖고 싶지만 너무 비싸서…”지난 주 아테네 올림픽 주경기장 앞 삼성전자 홍보관에서 만난 한 그리스 젊은이는 전시된 최첨단 카메라폰을 만지작 거리며 주머니 사정을 안타까워했다.올림픽 주요경기가 모두 끝나고 폐회식만 남겨둔 끝물이었지만 홍보관은 인파로 가득했다. 눈을 반짝이며 꼼꼼히 휴대폰을 살펴보는 호기심 많은 내방객들은 대부분 20~30대 젊은이였다. 40만~50만원에 팔리고 있는 삼성전자의 카메라폰은 세련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노키아나 모토로라 제품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스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메달순위 10위권의 체육강국으로보다 고급 휴대폰을 잘 만드는 나라로 통했다.
이스탄불에서 만난 40대 터키인은 우리나라를 ‘자동차 잘 만드는 나라’로 꼽으며 호감을 표시했다. 영어 스페인어는 물론 일본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최근 값싸고 성능 좋은 현대자동차가 많이 들어 와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시내 곳곳에서는 벤츠와 BMW 못지 않게 질주하고 있는 현대차를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터키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헐벗은 나라가 아닌 자동차를 수출하는 기술강국의 이미지가 심어져 있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제품이 잘 팔리고 인정 받는다는 것은 기쁘고 뿌듯한 일이다. 이국 땅에서 우리나라 제품 광고만 봐도 대견스럽던 10여년 전에 비하면 최근 우리 기업들의 선전은 그야말로 ‘괄목상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국가 이미지의 대부분을 기업이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현상은 무척 고무적이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사와 GM으로 미국을 느끼고 소니와 도요타로 일본을 이해한다. 지멘스와 BMW를 보고 독일제품의 고급 이미지를 떠올린다. 선진국형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주체는 대통령도 직업외교관도 아닌 기업인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역할이란 세계적으로 지명도 높은 글로벌기업이 여럿 나올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과거사 바로잡기도 좋고 지방분권도 좋지만 기업을 살리고 고용을 늘리는 일이 국정의 최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엊그제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정부 들어 친 노동자 정책, 기업에 불리한 정책, 좌파적 정책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대통령이나 정부가 반기업 정서를 만들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도 했다.“전경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서 격려해주고 또 따로 초청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기업 총수들 모아 놓고 밥한끼 먹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고,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도록 지원하고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기업에 충격과 불안을 주지 않는 사려 깊고 신중한 발언은 기본 조건이다.
대통령은 이 달부터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순방할 예정이다. 정상회담에서 국빈급 환대를 받겠지만 그 나라 국민들은 한국의 대통령을 그리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도 자녀들이 탐내는 첨단 휴대폰과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가‘메이드 인 코리아’인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기업의 힘은 이런 것이다.해외 순방길에 오르는 대통령이 기업의 소중함과 가치를 깊이 느끼길 기대한다.
이창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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