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진상 규명을 둘러싼 여야간 힘 대결이 시작됐다. 우리당이 8일 국회 행자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개정안' 상정을 강행한 데 이어 한나라당이 13일 독자 개정안을 제출키로 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양당이 각각의 개정안을 내고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이지만, 친일진상 규명문제에 대해 서로의 시각과 계산이 전혀 달라 향후 대립은 매우 격렬한 양상을 띌 수 밖에 없다.
여야는 이날 오후 표결로 개정안 상정을 의결하기 전 2시간 여 동안 고성과 삿대질을 교환하며 치열한 상정 찬반공방을 벌였다. 한나라당측 간사인 이인기 의원은 "법안이 발효되기도 전에 개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위협하며, 여당의 개정안엔 헌법 파괴적 조항이 많다"고 개정자체에 반대했다. 친일진상규명법은 3월 국회를 통과해 23일 발효를 앞두고 있다. 이 의원은 또 "교섭단체간 합의가 안 된 상정 강행은 국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춘 의원은 "여당의 개정안 제출은 태아의 코와 턱이 비뚤어졌다고 뱃속에 있는 채로 성형수술을 하자고 하는 꼴"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우리당 간사인 박기춘 의원은 "누더기 법안을 일단 시행하고 나면 수정하기가 더욱 힘들다"고 개정의 당위성을 피력한 뒤 "한나라당을 포함한 여야 의원 171명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협의 자체를 거부했다"고 비난했다. 강창일 의원은 "한나라당도 다수당 때 날치기를 밥 먹듯 한 것은 하늘도 땅도 다 안다"며 "여야와 국민 사이에 합의가 이뤄진 개정안 상정을 미루는 건 국민 기만행위"라고 주장했다.
우리당이 상정 방침을 굽히지 않자, 이인기 의원은 "한나라당의 당내 조율을 마무리한 뒤 13일 회의를 다시 열어 양당 개정안을 같이 내 협의하자"고 타협안을 냈다. 그러나 우리당의 이용희 행자위원장이 "그건 상정을 미룰 이유가 안 된다"며 상정여부를 결정할 표결을 선포하자, 한나라당 의원 10명은 항의의 뜻으로 전원 퇴장했다. 표결 결과는 우리당과 민노당 참석의원 14명 중 찬성 13명, 기권 1명이었다.
한나라당은 조사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진상규명위원회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별도 개정안을 13일 행자위에 제출해 여당과의 협상 토대로 삼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당이 "법안심사 소위에서 여당 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공청회와 대체토론 등 절차를 진행시켜 23일 기존 법이 발효되기 전에 본회의에 올리겠다"는 입장이어서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與, 독립유공자 "友軍 모시기"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당이 전방위로 우군 확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원로 독립유공자들 챙기기에 적극 나서면서 '민족주의'에 호소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전날 천정배 원내대표가 독립운동 유관단체 대표들을 초정한 데 이어, 8일에는 이부영 당의장이 김희선 의원 등과 함께 직접 광복회를 찾았다. 이 의장은 김우전 광복회장에게 "광복회 등 독립운동 유관단체들이 친일 진상 규명의 주체가 돼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안 하려고 얼버무리는 야당을 채찍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야간에 치열하게 공방 중인 상태에서 원로 독립운동가들의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가의 민족주의'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이 의장은 "어른들의 입장이 지금 보다 중요한 때가 없다"며 "역할을 해주시기 바란다"며 재차 당부했다.
이에 김 회장은 "김덕룡 원내대표가 윤봉길 기념 사업회장으로 전에는 민족정기를 부르짖었는데 야당 돼서 달라졌느냐"며 "김 대표를 만나 얘기하겠다"며 호응의 뜻을 밝혔다.
7일에도 천정배 원내대표는 윤경빈 독립기념관 이사장, 석근영 한국광복군 동지회장, 이현기 민족대표 33인 유족회장, 김삼열 독립유공자 유족회장, 유억동 한국 독립동지회장 등을 국회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천 대표는 "독립투사와 반민족행위자의 행적이 사실 그대로 진상 규명되는 것이 민족 구성원의 최소한의 임무"라고 '민족정기'를 강조한 뒤, "다른 정당들도 잘 설득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은 "법 통과를 위해 독립운동 원로들이 다 모였다"며 "이번에는 제대로 된 친일청산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이라크 파병 등으로 시민 단체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아왔던 우리당이 일단은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한 셈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