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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개운치 않은 험담 몇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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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개운치 않은 험담 몇 마디

입력
2004.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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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지 오늘로 꼭 쉰여섯 해다. 일제 하 민족해방운동 세력 일부가 주춧돌을 놓은 이 정부와 국가를 남쪽에서는 오래도록 북괴로 불렀고, 남북 교류와 화해의 물꼬가 트인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북한으로 부르고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더러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북측으로 부르기도 한다.분단 구조의 지속에 남한과 북한 그리고 외세 가운데 어느 쪽의 책임이 더 무겁거나 가벼운지는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북한 역사 56년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정권 초창기에 기세 좋게 내세웠던 ‘민주기지론’이라는 허울과 달리, 북한은 남한의 민주주의 세력에게 도움을 준 적이 없다. 사실은 그 반대다.남한 사람들의 일반적 감수성이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과격한 언어와 모험주의적 실천으로 이른바 ‘남조선혁명’의 물장구질을 해대면서, 북한 정권은 남한 반민주세력의 듬직한 친구 노릇을 해 왔다.1980년대 남한 민족민주운동권 일각에 스며든 그들의 기괴한 사회정치철학은 운동 자체의 퇴행을 불러왔다. 흔히 북핵 문제로 불리는 사태도 남한의 민주주의자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면 그들 내부는 어떤가? 살아보지 않았으니 실감을 토로할 수야 없지만, 이 사회는 쉰여섯 해 전 선의와 감격에 차 있었을 정권 창건자들의 전망과는 대척에 놓여있는 집단주의적 디스토피아인 듯하다.어렵기 짝이 없다는 경제 사정은 차라리 주변적 문제다. 정작 큰 문제는 중세 가산국가와 현대 전체주의 국가를 섞어놓은 것 같은, 그래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개인을 질식시키는 사회구성 원리의 퇴행성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 사회가 이렇게 기형화한 것이 오로지 미국 탓만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얼마간 남한 학계 일각에서 유행한 내재적 접근방법이라는 것은 북한체제에 대한 무책임한 온정주의다. 주체사상이 형성된 특수한 역사적 조건과 현실적 영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고하는 이 논변은, 그 어떤 이론적 곡예를 하더라도, 결국 기존체제의 합리화에 기여한다. 사실 내재적 접근방법은 만병통치약이다. 우리는 이 내재적 접근방법을 통해 북한체제만이 아니라 박정희 유신체제도, 심지어 나치체제도 정당화할수 있다. 이런 내재주의는, 철학적으로, 각각의 사유방식은 저마다 고유한진리와 도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상대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상대주의자들은, 이미 2천수백년 전에 플라톤이 프로타고라스를 비판하며 지적했듯, 모든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그들 자신의 진리마저 상대화함으로써 스스로의 논증을 무너뜨릴 운명에 처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남한 민주주의자들의 무관심과 너그러움은 그래서 무책임하고 위선적이다. 이런 지적이 제가 사는 사회의 인권 문제에는 한 번도 눈길을 건네본 적 없는 남한의 극우분자들로부터 주로 나오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런 무관심과 너그러움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일 수도 있다. 거긴 아예 그런 사회거니 하고 한 수 접어주는 ‘문명인’의 시선 말이다. 북한을 방문하고 싶은 남한 사람들은 수두룩하겠지만, 그들 가운데 지금의 북한 사회에 정착해 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포진한 냉전주의자들의 국가보안법 존치론이 반동적 정파ㆍ언론의 환호와 겹쳐지며 으스스한 맥놀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체제에 험담을 하는 것이 개운치는 않다. 말할 나위 없이 국가보안법은 당장 없애야 한다. 그것은 지금의 북한체제에나 어울리는 야만의 올가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남한의 민주주의자들은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민주주의나 인권은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특수가치가 아니라, 인류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가치이기 때문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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