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사에게는 손 쉬운 재원 조달 수단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 받아온 이른바 ‘네티즌 영화 펀드’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금융 당국이 자산운용업 허가를 받지 않은 제작사의 펀드 모집은 불법이라는 유권 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8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영화 제작사 ‘강제규&명필름’은 새 영화 ‘안녕, 형아’의 제작비 전액인 19억5,000만원을 인터넷 공모 펀드로 모집하겠다는 광고를 7일자 모 일간지에 실었다. 올 1월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네티즌 공모에 나선 데다, 제작비 전액 공모는 사상 처음이어서 적잖은 관심을 끌었다. 원금의 80%를 보장하되 손익분기점 관객을 초과할 때마다 1인당 0.8원씩 투자 구좌(100만원) 별로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광고를 접한 금융감독원의 입장은 “불법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 금융감독원 유병철 자산운용감독국장은 “계약서 등을 면밀히 검토해 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최종 결론을 말할 수는 없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실적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것은 간접투자에 해당하는 만큼 현재로선 불법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네티즌 영화 펀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영화 투자자금을 모집한 뒤 실적에 따라 수익금을 배분해주는 펀드. 한국 영화가 급성장하면서 5년 전 ‘반칙왕’을 시작으로 ‘공동경비구역JSA’ ‘무사’ ‘친구’ ‘바람난 가족’ 등 그간 상당수 영화들이 네티즌 펀드로 자금을 모았고, 특히 최고 수익률이 300%에 달하면서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어 왔다.
문제는 올 1월부터 시행된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이었다. 투자 대상이 유가증권 외에도 부동산 금 환율 영화 음반 등으로 확대되면서, 자산운용업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는 이들을 투자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것이 금지됐다.
현재 영화 제작사와 금융 당국의 입장이 대립되는 부분은 투자 대상을 특정했을 경우 간접 투자에 해당되는 지 여부다. 강제규&명필름 측 관계자는 “특정 영화에 투자자들이 직접 투자하는 형태인 만큼 간접 투자가 아니다”고 주장했고,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특정 부동산에 투자하는 부동산펀드 역시 간접 투자로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직 자금 모집이 이뤄지지 않은 단계여서 불법으로 최종 판정되더라도 강제규&명필름 측에 특별한 제재는 없을 전망이지만, 앞으로 자산운용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영화 펀드 모집이 원천 봉쇄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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