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군 장산리에 조선 태조 때 호은(湖隱) 허기(許麒)가 이 마을의 풍수지리적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 있다. 마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만든 숲이라는 의미로,‘비보(裨補)숲’이라고 부른다. 숲을 조성했을 때 길이가 1,000m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길이 100m, 너비 60m로 약 6천㎡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풍수상 장산리의 뒷산은 ‘황새형’이라고 하며, 마을의 앞산은 ‘고동’형태로 황새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장산숲은 “바다가 마을에 비치면 번쩍번쩍해 마을에 좋지않다”하여 앞산과 뒷산을 연결하여 조성한 숲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에서 밖을 바라보면 지금은 도로에 의해 단절됐으나, 조성 당시에는 장산숲이 앞산과 뒷산의 마루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숲 밖에서 마을을 보면, 마을은 숲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멀리 바다에서 왜구가 출몰해도 쉽게 눈에 띄지 않도록 해주었을 것이고, 마을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숲이라는 여과대를 거치도록 하는 의도도 엿볼 수 있다. 숲 안에서 보면, 숲 내부에 김해 허씨 소유의 비각과 재실이 있으며 연못이 있다.
숲을 차지하고 있는 수종은 주로 개서어나무이지만, 느티나무, 산벚나무,소나무, 팽나무, 상수리나무, 은행나무, 배롱나무, 참느릅나무, 말채나무, 물푸레나무, 푸조나무, 졸참나무, 광나무, 버드나무, 보리수나무, 사철나무, 회화나무, 이팝나무 등 무려 19종 221그루가 생육하고 있다. 우리 마을숲은 소나무 또는 느티나무 등 단순한 몇 수종이 숲을 차지하고 있는경우가 많지만, 이 숲은 다양한 나무로 숲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숲 안에 연못이 있어 참개구리와 청개구리도 볼 수 있었지만, 황소개구리도 적지 않았다. 연못에서 날개돋이한 곤충들이 장산리 앞뜰의 뙤약볕에 나가기 전에 장산숲에서 연약한 피부를 단련하기도 했을 것이다. 연못에서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날아온 비취빛 날개를 가진 물총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지역의 독특한 모습 중 하나이다.
마을숲 지붕은 나무 그늘로 온도를 낮추고 앞뜰의 데워진 공기는 차가운 숲으로 들고 나면서 숲에서 앉아 있는 마을주민에게 시원한 바람으로 다가선다. 한 여름 이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바둑과 장기에 빠져 더위를 보내는 분과, 앞뜰의 파릇파릇한 나락을 보면서 올해 풍흉을 이야기하는 마을어르신의 담소는 시원하다.
해질녘 이른 저녁을 마치고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면, 어느새 별과 달이 장산숲 위로 살며시 고개를 든다. 매미와 소쩍새 소리는 숲을 가득 채우고 연못 위를 사뿐히 걷는 소금쟁이의 발걸음도 장단을 맞춘다. 장산숲은 이렇게 마을숲 생물과 마을주민이 어우러지며 깊어가는 여름밤의 대화를 나눈다.
우리 조상들이 옛날 만들었던 숲은 지금은 어느덧 큰 숲이 되었고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는 숲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옛 마을에 마을숲이, 고을에 고을숲이 있었듯이, 도시에 도시숲을 만들어 주민들이 상호교류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한국인 내면에 흐르고 있는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단순한 시설물과 놀이시설보다는, 우리 조상의 마을숲 조성개념을 탐구하여 도시숲을 조성하고 가꾸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본다.
박찬열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park@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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