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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영상 역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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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영상 역사 시대

입력
2004.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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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온 나라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 인류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을 남기면서 시작되었다. 문자 이전의 시대를 우리는 역사 이전, 즉 선사시대라 부른다. 선사시대의 생활상에 대해서 우리는 어렴풋한 정보만을 갖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나 돌도끼 혹은 조개무지 등의 유물에 대한 고고학적 해석을통해 추측과 해석만이 가능할 뿐이다.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역사시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 남기 시작했다. 그러나 텍스트에 갇혀 있는 역사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공자나 예수는 어떤 표정과 목소리로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잠시 미래를 상상해 보자. 서기 31세기. 우리 후손들은 인류가 20세기부터 영상매체를 통해 전혀 새로운 종류의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볼 것이다. 15세기의 세종대왕이 어떤 표정과 목소리로 훈민정음을 반포했는지에 대해서는 영원히 알 길이 없겠지만 21세기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떤 목소리와 표정으로 이야기했는지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신라시대 처용가의 멜로디가 어땠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요즈음 즐겨 듣는 유행가의 뮤직 비디오는 천년 뒤 후손들도 즐겁게 보고들을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이전은 텍스트로만 존재하기에 희미하게 겨우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일 것이지만 20세기 이후는 영상과 음향을 통해 환히 들여다보고 들을 수 있는 역사가 될 것이다.따라서 우리 후손들에게 20세기 이전은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오래된 옛날로 느껴지겠지만 20세기 이후는 거의 동시대처럼 느껴질 것이다.

요컨대, 우리에게 15세기는 상당히 먼 옛날이지만 31세기를 사는 우리 후손에게 25세기는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500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마치 동시대처럼 원하는 대로 뉴스를 검색할 수있을 것이며, 유행했던 노래나 영화도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넥시스 같은 뉴스 검색을 사용해 본 사람이면 뉴스 데이터 베이스 검색이 가능한 연도와 그 이전 연도에 대해 상당히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는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의 감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인류에게 20세기 이후는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20세기 영상매체의 발명은 문자 발명 이상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문자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가르는 구분이라면 영상매체는 역사시대와 역사시대 이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문자 발명을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되고, 영상매체 발명을 기준으로 역사시대와 후역사시대 혹은 후사시대(post-historic age)로 구분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다. 추악하고 비열했을지도 모르는 선조들의 모습들은 모두 흐릿한 텍스트 뒤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온갖 추악한 모습-연쇄살인, 테러, 환경오염, 전쟁, 부정, 부패, 온갖 폭력과 거짓말-은 디지털 영상매체에 차곡차곡 데이터 베이스로 쌓여서 자자손손 전해질 것이다. 시간이 약이고 세월이 흘러가면 희미한 추억 속에 모든 것이 아름다워만 보이던 좋은 시절은 이제 다 지났다. 한번 나쁜 짓을 해서 뉴스에 오르게되면 천 년 만 년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무시무시한 디지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장난 삼아 미니 웹 페이지에 올리는 사진 한 장, 무심코 보내는 이메일 한줄, 별다른 생각 없이 올리는 블로그 몇 줄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사이버 공간을 떠돌지 모르니 주의해야 할 일이다.이제부턴 그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착하게 살 자신이 없거든 적어도 아무런 흔적이라도 남기지 말고 살 일이다.

김주환 연세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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