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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10>쿠바-①쿠바는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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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10>쿠바-①쿠바는 어디로 가나?

입력
2004.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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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고 떠나는 것도, 누가 떠나고 오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네/ 어른들 흉내를 내는 아이들도 문제가 아니라네/ 누가 장부를 속이고 고치는 것도, 남은 것을 자기 호주머니에 챙기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네... 진짜 문제는 영혼이지/ 문제는 부활에 대한 것이라네/ 친구여, 언제나 사랑을 심는 것이 문제라네”

7월23일 혁명광장에는 “라틴음악의 밥 딜런”이라 불리는 쿠바 국민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야외공연이 있었다. 60세가 가까운 나이여서 거의 공연을 하지 않는 그이지만,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 열창을 했다.

원래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는 트로바 음악인지라 레오 브루웨르가 지휘하는 쿠바 국립관현악단의 무거운 반주와는 좀 어울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은 아름다웠다. 게다가 공짜로 듣는 기쁨도 있지 않은가? 실비오는 쿠바의 문제가 사랑을 심는 것이라고 열창한다. 부패도, 망명도, 세대 차이도 문제가 아니란다. 관람석의 앞줄에는 ‘유일 지도자’ 카스트로도 앉아 있었다. 노혁명가는 시인의 메시지에서 무얼 느꼈을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쿠바의 정국은 경색되었다.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서반구에서 유일한 비민주주의 국가”인 쿠바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 이후 마이애미의 반카스트로 단체들은 “오늘은 이라크, 내일은 쿠바!”라는 구호로 데모를 하기도 했다. 올해 1월 부시 대통령은 “쿠바의 민주주의를 위한 시급하고도 평화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은 이라크형 과도정부안도 만들었고, 자유무역지대안을 포함한 경제복구 계획까지 제출하기 했다. 5월에는 망명자들의 쿠바 여행을 금지했고, 쿠바의 외환 사정을 압박하기 위해 가족 송금도 일절 금지시켰다. 아울러 반정부 지원금도 3,500만 달러로 증액했다.

당연히 카스트로 정부는 경화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년간 계속 정치적 반대자와 인권운동가들의 검거와 투옥이 뒤따랐다. 정치적 동원과 관제 데모도 유난히 잦았다. 1990년대 말부터 반체제 운동을 주도하는 기독교인 오스왈도 파야의 ‘바렐라 프로젝트’도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외국에 잘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법치국가, 기업의 자유, 민간 활동과 노동시장의 합법화, 보통선거와 정치적 다원주의를 지지하는 시민운동으로 일찍이 1만1,000명의 서명을 받은 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에 관여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카스트로는 2002년 6월에 헌법 제3조를 수정하여, 사회주의의 불가역성을 명시적으로 선언했다. “헌법이 규정한 사회주의와 혁명적 정치ㆍ사회 시스템은 바꿀 수 없다. 쿠바는 결코 자본주의로 회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정책과 인권 탄압의 여파로 카스트로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쿠바 압박 정책을 반대해온 우호국인 유럽 국가들은 물론, 인근 우방인 멕시코까지도 잃게 되었다.

카스트로는 1959년에 혁명으로 집권한 이래 45년간 권좌에 있었다. 그는 혁명을 일으켰고, 혁명적 가치를 고양했으며, 혁명의 성과물인 교육과 보건 제도를 남겼다. 누구도 그의 공간을 넘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를 비판하기는커녕 언급하기조차 꺼린다. 공산당의 정치국원들이 동생 라울 카스트로를 제외한 나머지를 50대로 세대교체를 했지만 누구도 제2인자로 나서지 않는다. ‘유일한 지도자’의 공간은 물리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전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포스트 카스트로 체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대는 카스트로 없는 쿠바를 꿈꾸고 기획한다. 젊은 세대의 감각은 확실히 다르다. 신예작가 아빌리오 에스테베스는 이렇게 말한다.“혁명은 내가 관심이 없는 미래의 이름으로 현재를 희생한다. 내 관심은 오늘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다.” 혁명은 “하늘나라와 천국의 이름으로 현재를 희생하는” 가톨릭교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바나 대학에서 만난 경영학도인 다비드(가명)는 다소 냉소적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것은 유일 지도자의 관심사일 뿐. 난 떠날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우수한 교육을 받지만, 전공을 살릴 취업의 기회가 전혀 없는 이들은 많은 것이 바뀌길 원한다. 많은 이들의 냉소적 시선에는 체제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500여 개나 되는 반정부 인권단체들의 역량을 과대평가할 수도 없다. 대부분 미국 이익대표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분열된 내부를 통합시킬 지도자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외신기자들과 인터뷰는 열심히 하지만, ┠?삐땃옳?장 살포하는 담대함조차 없다고 누군가 비꼬기도 한다. 인터넷과 팩스의 세상이기도 하지만, 정보 교류조차 쉽지 않다. 인구 100명 6명 꼴로 전화가 있기 때문에 인터넷 접속도 쉽지 않은 데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정부당국의 통제도 거의 완벽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체제 내부는 그렇게 획일적이지는 않다. 일각에서는 시장개혁에 반대하는 좌파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다계급주의 속에서 개혁과 개방을 수용해야 한다는 개혁좌파도 공존한다. 심지어 관광산업 주도형에서 공산품 수출 모델로 이행해야 한다는 구조개혁론자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들은 사회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인정해야 하고 정치도 이에 걸맞게 틀을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 사실상 정치적 다원주의를 수용한다. 하지만 여전히 실세는 군부다. 라울 카스트로가 주도하는 집단지도체제도 군부의 지지를 받는 이행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군부는 체제 내에서 가장 강력한 엘리트 집단이다.

경제개혁을 주도하여 많은 경제적 이권을 장악하고 있고, 당의 정치국과 선전기관, 국가 고위층 곳곳에 군부 인사가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인들 다수는 마이애미의 망명자들이, 미국 정부의 도움을 얻어 체제를 장악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 재산권이 뒤집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혁명정부가 그 동안 일군 교육과 보건 등 사회복지 체제가 유지되길 원한다. 동시에 대미 개방을 통해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길 바란다. ‘유일 지도자’가 사라진 뒤에 새로운 정당성을 획득한 체제가 다소 모순적이기도 한 다수 쿠바인들의 열망을 채워줄 수 있을까?

/이성형 중남미 전문가

협찬: 삼성전자

■외교관 출신 펠리페 이슬라-"500여개 인권단체 유명무실"

펠리페 이슬라씨는 평양의 쿠바 대사관에서 도합 8년간 근무를 한 외교관 출신의 통역관이다.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까닭에 쿠바에 오는 한국의 기자, 방송인, 기업인 등과 접촉이 잦다. 그는 한-쿠바 관계뿐만 아니라, 내외 정세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견해를 밝혔다.

-최근 우방국인 멕시코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가 이제 겨우 복원된 것 같은데.

“쿠바의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세가 집요하다. 유럽 국가들도 동조하고 있다. 전통적 우방국인 멕시코는 우리 정책에 대해 중립 내지 비판적 지지를 보냈는데, 폭스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입장에 경도된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대사관이 정상화해 다행이다.”

-쿠바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우리가 완벽한 사회에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국 언론의 인권 보도는 명백히 과장된 것이다. 쿠바에는 약 50여 개의 인권단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1인1조직이고, 미국 이익대표부에서 주는 지원금을 타먹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구심점이 있을 까닭도 없고,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최근 마이애미로부터 여행과 친척의 외환 송금도 금지되었다고 하던데.

“미국의 선거 철이니 부시 행정부가 재미 쿠바인의 표를 의식해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는 플로리다에서도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다.쿠바인들은 전통적으로 가족을 중시한다. 여행과 송금까지 금지하자 마이애미의 쿠바인들도 화를 낸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가 쿠바의 항암치료제 3종을 수입하고, 공동상품으로 개발하자는 제안을 연방정부에서 인가해준 것을 보라, 얼마나 일관성이 없는가.”

-한국과의 수교전망은.

“카스트로는 아직 북한을 버릴 생각이 없다. 한국보다 쿠바의 준비가 덜 되어있다. 쿠바는 한국 공산품을 많이 수입하고 있고, 한국 사람들은 음악, 유기농, 바이오 기술에 대한 관심이 크니 길게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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