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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피지' 첫 세계정상에 서다/싱, 도이체방크챔피언십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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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피지' 첫 세계정상에 서다/싱, 도이체방크챔피언십 우승

입력
2004.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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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진주’가 아니다. 이젠 ‘황제’라고 불러라.7일(한국시각)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도이체방크챔피언십 최종라운드가 열린 미국 보스턴TPC(파71ㆍ7,451야드) 1번홀. PGA무대에서 ‘앙숙’으로 소문난 비제이 싱(41ㆍ피지)가 타이거 우즈(28ㆍ미국)가 선전을 다짐하며 악수를 나눴다. 우즈의 시대가 가고 싱의 세계가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싱은 이날 2언더파 69타를 쳐 16언더파 268타로 시즌 6승째를 챙기며 264주 동안 계속된 우즈의 독주체제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다. 1993년 PGA투어에 발을 디딘 후 11년만에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것이다. 올 시즌 다승 1위를 질주한 싱은 통산 21승을 달성했고 우승 상금 90만달러를 더해 시즌 상금 788만9,566달러로 지난 해에 이어 상금왕 2연패를 사실상 굳혔다.

세계랭킹은 최근 2년간 4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대회 성적을 규모와 비중 등을 감안해 점수를 부여하고, 시점에 따라 분기마다 가산율을 곱한 값에 대회수를 나눠 매겨진다.

싱은 “지난 해에도 내 목표는 세계 1위였고 올해도 역시 세계 1위였다”면서 “내 드라이버가 우승의 열쇠였고 나는 멀리 치면서도 똑바로 보낸다”라며 ‘넘버원’으로서의 자신감을 보였다. 우즈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인 뒤 “싱과 그동안 많은 대회를 치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넘버원’ 탈환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승부는 치열했다. 3타차 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싱은 13번홀(파4)에서 보기로 우즈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하지만 14번홀(파4)에서 우즈가 뼈아픈 보기를 범하면서 승부의 추는 싱으로 기울었다.

승부처는 17번홀(파4). 15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으며 우즈를 2타차로 따돌린 싱은 7m 버디 퍼트를 떨구며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낙담한 우즈는 3m 버디 퍼트를 놓치며 고개를 떨구었다.

싱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 ‘황제’ 등극을 자축했다. 우즈도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았으나 2언더파 69타(합계 13언더파 271타)로 공동2위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이 대회 챔피언 애덤 스콧(호주)은 6언더파 65타의 맹타를 뿜어내 우즈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박희정 기자 hjpark@hk.co.kr

■비제이 싱 누구인가

비제이 싱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피지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골프를 시작한 유색인종으로 온갖 설움과 역경을 딛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싱은 인도계 항공정비 기술자였던 아버지 모한 싱으로부터 골프를 배웠다. 어린 시절 골프장 펜스 밖에서 공을 주워 관광객에게 팔았고, 틈틈이 아이언을 휘두르며 꿈을 키웠다. 그러다 80년대 초 지금의 아내인 연상의 유부녀 아데나 세스를 만나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며 고국을 떠났다.

1982년 아시안투어에서 프로로 데뷔한 싱은 호주에서 활동했지만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회원제 클럽에 출입금지를 당하는 설움도 겪었다. 차별대우는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84년 말레이시아PGA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컵을 거머쥐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하지만 세계 무대로의 도약을 꿈꾸던 싱에게 피부색깔보다 더 혹독한 시련이 닥쳤다. 85년 인도오픈에서 스코어 카드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결국 2년 동안 프로무대에 발을 들어놓을 수 없었다. 죽고 싶었고 골프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클럽프로로 활동하며 아프리카와 유럽을 전전했다.

93년 마침내 ‘꿈의 무대’인 미프로골프(PGA)투어에 진입했다. 그 해 뷰익클래식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안으며 신인왕까지 거머쥐는 화려한 신고식을 했지만 인도오픈의 ‘멍에’는 항상 그를 괴롭혔다.

싱은 연습에 매달렸다. 일주일에 6일 매일 3시간씩 체력훈련을 했고 ‘연습중독자’란 말을 들었다. 그 누구도 그보다 먼저 연습장에 나오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그보다 늦게 연습장을 떠나지 못했다. 마침내 ‘넘버원’에 올랐다.

/박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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