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1~3년생 일반계 고교생은 122만여 명인 반면 실업고생은 54만여 명이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발간한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실업고생의 대학진학률이 급격히 늘고 있다. 1990년에 8.3%였으나 2004년에는 62.3%이다. 이는 실업고가 교육적 정체성을 잃고 취업보다는 진학 준비 기관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실업고는 학제상 종국 교육기관이다.즉, 대학 진학을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산업현장으로 진출할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업고의 교육 목표, 교육 과정, 시설 및 기자재, 교사 구성 등이 인문고와는 확연히 다른것이다.
공업 입국의 신화를 창조한 실업고가 이렇게 허우적거리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정부의 잘못된 직업교육 정책이다. 실업고를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대학 입학이 용이한 특별전형 제도를 확대한 것이다. 이를 대학 재정 지원과 연계시킴으로써 대학에서는 실고생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둘째, 고졸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를 들 수 있다. 노동연구원이 발표한 ‘학력 간 임금 격차의 변화와 요인 분석’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고졸 근로자 월 평균 임금(2002년 기준)은 173만8000원으로 대졸 이상(249만5000원)의 69.7% 수준밖에 안 된다. 이러한 대우를 받으며 누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려 하겠는가. 더욱 벌어진 임금 체계와 사회적 분위기가 실고생의 대학 진학을 부채질하고 있다.
셋째, 대학들의 과도한 경쟁을 들 수 있다. 학생 자원 부족 시대를 맞아 모든 대학들이 학생 모집에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고는 대학 입시 전략의 매우 중요한 목표가 되었고 실고생을 쉽게 입학시키기 위해 대학들은 갖가지 편법을 곁들인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일반 대학까지 뛰어들면서 실고생의 대학 진학은 더욱 쉬워졌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우선 고등학교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인문고, 실업고 식으로 이원화된 체제를 일원화한다. 인문고와 실업고를 통합하여 그 안에서 학생들이 적성과 흥미에 따라 진학교육과 직업 교육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한다. 학생이 선택한 길이 운명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선진국 교육개혁의 커다란 패러다임이다.
고교 체제 개혁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면 실고생의 계속 교육 기회를 새로운 제도로 열어주어야 한다. 현재 계속 교육은 거의 전문대에 의존하고 있다.그런데 전문대를 졸업하고는 일반 대학에 관련 전공학과가 개설되어 있지않아 공부를 중단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실업고→전문대 준학사 과정→전문대 학사과정→직업 전문대학원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교육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또한 대학 단계의 직업교육 틀을 개편함으로써 직업교육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전문대, 기능대, 기술대, 산업대의 교육 목표는 비슷비슷하다. 배출되는 인력도 큰 차이가 없으며 교육적 낭비도 심하다. 그래서 전문대를 중심으로 직업교육 체제를 전면적으로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 호주의 경우, 전문대학(TAFE)을 직업교육의 중심축으로 내세워 교육내용을 표준화하고 교육의 질 관리를 하여 국가 경쟁력을 한층 높이고 있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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