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왜곡으로 촉발된 한중 갈등이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 간도 땅 귀속을 둘러싼 외교 문제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국회의원 59명이 “1909년 청일간에 체결한 간도협약은 원천 무효”라는 내용을 담은 ‘간도협약의 원천적 무효 확인에 관한 결의안’을 낸 데 이어, 간도되찾기운동본부와 함께 최근 발족한 한국간도학회가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중국 동북공정과 간도 영유권 문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강력하게 항의해온 시민단체 활빈단은 간도 되찾기 범국민 운동을 선언, 중국 건국기념일인 10월 10일 쌍십절에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간도=한국 영토’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학계와 시민단체 일부가 계속 제기해온 간도 영유권(점령하여 소유하는 권리) 문제는 제국주의 일본의 조약이 모두 원천 무효이므로 영토 분쟁지역인 간도를 중국에 넘긴 간도협약도 무효라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1960년대 북한이 중국과 비밀리에 국경조약을 체결해 현재 국경을 확정하였으나, 통일 이후 이 조약을 승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무효를 주장하고, 중국과 원점에서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대 노영돈 교수는 이날 간도학회 토론회에서 “간도협약의 무효 선언확인을 위한 국회의결을 촉구하고, 외교통상부가 간도협약 무효를 외교 절차에 따라 중국에 통보해야 한다”며 “간도 영유권 문제가 조기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을 경우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재중동포들이 주인인 땅이 되도록 장기적인 안목에서 적극 지원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만강 원래 국경 아니다
간도는 원래 함경북도 온성군 일대 두만강의 삼각주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일반적으로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있는 섬과 같은 땅이라는 의미로 옛 만주일대를 가리킨다. 19세기 후반에 조선인들이 강 건너 땅을 개간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의 땅이 각각 동간도(또는 북간도)ㆍ서간도로 불리기 시작했다.
청을 세운 여진족의 시조가 있던 땅이라 해서 17세기 중반부터 조선과 합의해 이주를 금하는 봉금지대로 두었던 곳이고, 국경은 확정되어 있지 않았다.
국경을 정하려는 첫 시도는 1712년 중국이 일방으로 나서 진행한 백두산 정계비 수립이다. 비문에서 ‘동은 토문이 경계’라는 대목이 논란거리다. ‘토문’을 중국은 두만강이라고, 조선은 송화강 상류라고 주장했으며,일제에 국권을 뺏기기 전까지 계속 영토 분쟁 상태에 있었다.
간도학회 부회장인 이일걸 박사는 “18세기 중반 프랑스의 당빌 지도를 비롯해 다수의 러시아, 영국, 미국, 독일 지도에 간도가 조선 땅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말했다.
일본-중국 간도협약 무효
영토분쟁지역인 간도가 중국 땅이 된 것은 1909년 9월 일본과 중국의 간도협약 체결 이후이다.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국권 완전 강점을 눈앞에 둔 일본은 처음 간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강력 주장했으나 중국과 합의가 어렵자, 만주 일대의 철도 부지권, 탄광 채굴권 등을 넘겨 받는 조건(만주협약)으로 간도의 중국 영유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을사조약 자체가 무효인데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만주협약을 비롯해 일본제국주의 시대 모든 협약이 무효가 되었기 때문에 간도협약 역시 무효라는 지적이다. 인천대 노영돈 교수는 “간도협약이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본과 청 사이에 효력이 있는 것이지 당시 독립국가인 대한제국에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북한-중국 국경조약 문제
문제는 북한이 1962년 ‘조중 변계조약’을 통해 중국과 ‘압록강-천지-두만강 홍토수’에 이르는 선을 국경으로 비밀리에 확정했다는 데 있다. 통상 비밀조약은 유엔의 어떤 기관에도 원용할 수 없지만 어쨌든 분단 상황에서는 북한과 중국 사이는 유효하다. 남북이 통일될 경우, 북한의 국경조약을 당연히 승계해야 한다는 국제법의 규칙이 없으므로, 통일 한국이 주변국과 국경문제를 다시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학자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떤 조약이 원천 무효가 되려면 이해 당사국이 무효를 주장해야 하며, 국제법에서는 통상 그 기간을 조약 체결 이후 100년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간도협약의 경우 불과 5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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