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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바다' 베슬란/러시아 인질극 참사 현지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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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바다' 베슬란/러시아 인질극 참사 현지 표정

입력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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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떤 슬픈 말로도 이 처참한 죽음을 표현할 수 없다"러시아 인질극 참사의 현장인 베슬란 제1학교는 여전히 비탄과 눈물 그리고 고통 속에 잠겨있다. 희생자들을 매장하기 위해 학교 주변에 임시 조성된 공동묘지는 5일 자식을 창졸 간에 잃고 땅 속에 묻어야 하는 유족들의 오열로 가득했다.

꽃과 화환을 들고 묘지를 찾은 부모들은 자녀의 관이 하나 둘 들어설 때마다 간장을 쥐어짜는 비통의 눈물을 흘렸으며, 충격으로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가는 어머니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연년생 자매를 한꺼번에 잃은 한 40대 여성은 자매의 이름이 새겨진 비목을 밤새 쓰다듬다 혼절을 거듭했다. 그녀를 위로하던 주위 사람들도 결국 함께 눈물을 쏟았다.

가족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른 유족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그을린 시신을 뒤적이며 죽은 자식을 찾아 다니는 부모들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사망자 신원이 발표되는 벽보 앞에는 새 명단이 오를 때마다 수백명의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을 안고 명단을 확인하다 자식의 이름을 찾은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고 이름을 찾지 못한 부모들은 다시 사건 현장으로, 시체공시소로 달려나갔다.

자식의 사진을 든 초췌한 안색의 한 어머니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아들 이름을 대면서 "혹시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처절했다. 그녀는 아들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하자 "3살밖에 안 돼 자기가 누구인지 말도 못할 텐데 어떡하면 좋으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어린이들은 당시의 충격으로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상당수 어린이들이 음식물을 먹지 않고 엄마만 찾고 있다"며 "일부 어린이는 외상은 치료해도 정신적 충격에서는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커먼 피로 얼룩진 사건현장 여기저기에는 죽은 학생들의 소지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인질들이 모여있던 체육관에는 짝 잃은 신발과 샌들, 여자어린이의 머리띠 등이 그대로 놓여있었고, 'Classroom 15' 라고 적힌 2층의 한 교실은 인질들의 즉결 처형장으로 쓰인 듯 한쪽 구석 캐비닛에 짙은 선혈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당국의 허가로 이날 현장을 처음 다시 찾은 생존 학생들은 죽은 친구들의 소지품을 어루만지며 가져온 물통과 꽃, 과자 등을 내려놓았다. 물을 못 마시게 해 자신의 오줌을 옷에 적혀 마셨다는 친구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당국과 인질범들을 향해 내뱉는 격한 분노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주민들은 "인질범들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지만 인질을 다루는 데는 잔인하리만치 미숙했다"며 "복수하겠다, 이들을 몰살시키겠다"고 외쳤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죄스럽다는 한 여성은 "수백명의 어린 아이들을 죽이면서까지 그렇게 했어야 했느냐"고 당국을 원망했다.

참극의 현장, 베슬란의 주민들에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탈리아 로레토에서 집전한 애도의 미사도, 각국의 지원도, 테러범에 대한 전 세계의 분노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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