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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고교등급제 '한 줄 세우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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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고교등급제 '한 줄 세우기' 아니다

입력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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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영 교육부총리는 ‘고교 평준화 원칙을 유지한다는 정부의 원칙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준화 실시 비율이 일반계 고교의 절반을 겨우 넘어선 실정인데, 전국의 모든 고교가 평준화됐다고 할 수 있나. 고교 간 학력 격차가 엄연히 실존한다면 교육부는 외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특히 사립대학에서는 무시할 수가 없다.이러한 상황에서 부각된 ‘고교 등급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대학에 진학한 1950년대 후반에 이미 이 제도를 채택했던 사립대학은 고교 학업성적과 면접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물론 본고사는 없었다. 수능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지금의 ‘수시 1학기’전형을 100% 확대한 셈이었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데도 우리 사회엔 획일적 간섭주의가 팽배해 있다. ‘고교 등급제’가 전국의 고교를 ‘한 줄 세우기’로 서열화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언론매체가 있지만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줄 만들기’다. 이를테면 A 고교의 상위학생은 X대학에 진학하고 중위학생이 Y 대학에 진학한다면, A 고교에 대한 X 대학과 Y 대학의 평가는 서로 다를 것이다. 이른 바 특수목적고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대학 재학 중의 학업 성취도와 출신 고교의 ‘상관계수’를 근거로 고교를 평가할 수도 있을 게다. 이를 ‘대학 진학 연좌제’라며 매도하는 언론매체가 있지만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연좌제다. 선배들은 모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지 않겠나. 사립대학은 건학 이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더욱 다양한 전형요소를 개발할 것이다.

이처럼 고교 등급의 평가는 대학마다 다양해질 것이므로 한 줄이 아니라 무수한 줄이 만들어진다. 획일적 사고에 젖은 일부 언론매체는 대학의 ‘고교 등급제’ 유혹을 차단하라지만 엄연한 사교육기관인 사립대학의 학생선발권을 박탈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현재 우리 고등교육은 80% 정도를 사립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기본 권한인 학생선발권부터 확립해야 비로소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 교육부의 간섭주의야말로 사립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차단하는 동시에 부실한 대학의 도태조차도 막는 근본원인이 아닌가.

요컨대 사립대학에서 완전 무시험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는 필수적 전형요소가 고교 등급제다. 결과적으로 고교 정규 교육의 정상화를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사립대학의 정체성을 존중해야 비로소 우리 교육 서비스가 국제적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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