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열린 KBS ‘불멸의 이순신’ 시사회장. 정연주 사장을 비롯한 KBS 임원들이 자리 가득 메웠다. KBS는 4일 ‘불멸의 이순신’ 첫 방송에 앞서 ‘한국사회를 말한다’를 결방하고, 이례적으로 메이킹 필름을 선보이는 특집을 내보냈다.그러나 사내 일각에서는 오픈세트 건립 비용까지 합하면 5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제작비에 대해 ‘과잉 투자’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야심차게 선보인 100부작 드라마 ‘영웅시대’의 초반 부진으로 속을 썩던MBC. ‘황태자의 첫사랑’ 후속으로 1일부터 방송된 ‘아일랜드’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긍희 사장이 직접 ‘아일랜드’ 홍보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왕의 여자’ ‘장길산’ 등 대하사극의 잇단 부진을 ‘발리에서 생긴 일’ ‘파리의 연인’의 대박으로 만회한 SBS. 10월로 예정된 가을개편부터 금요일 밤 10부터 12시까지 120분간 드라마를 연속 방영하는 파격적인 편성안을 놓고 고심중이다. 지상파TV 3사가 ‘드라마 띄우기’에 목숨을 걸고 있다. 드라마가 단순한 시청률 경쟁을 넘어 프로그램 전반의 분위기, 방송사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양상이다.
▲드라마 대형화와 광고 부진
이런 현상은 드라마의 대형화 추세와 맞물려 있다. 지상파 3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왕의 여자’ ‘대장금’ ‘장길산’ ‘불멸의 이순신’ ‘영웅시대’ ‘토지’ 등 수십 억에서 수백 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50~100부작 드라마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MBC ‘대장금’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왕의 여자’ 실패 사례에서 보듯,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드라마가 실패할 경우 방송사 브랜드 이미지와 전체 광고수주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뿐더러 후속 작품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방송사들의 부담은크다. 각 방송사의 드라마 전쟁이 한층 치열해 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광고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사정이 더욱 악화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방송사 전체 프로그램 판매율이 70% 선에 머물고 있는데다, KBS2 ‘구미호외전’, MBC ‘사랑을 할거야’ 등 시청률이 부진한 드라마의 광고 판매율은 50%를 간신히 웃도는 정도. 드라마에서 밀리면 곧바로 경영이 타격을 받는 형국이 돼 버렸다.
▲미니시리즈 경쟁도 치열
대작 드라마가 예상 외로 부진하자, 각 방송사들이 트렌디성 미니시리즈로 틈새를 노리면서 ‘드라마 올인’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방송사들이 ‘국지전’을 위해 내놓은 드라마들은 한결 같이 SBS ‘파리의 연인’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톱 스타나 신세대 스타를 내세우고, 해외 로케이션 등을 통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최근 수ㆍ목 시간대에 가수 출신인 비, 성유리 윤계상을 비롯해 신세대 스타군이 총출동한 ‘풀하우스’(KBS2), ‘황태자의 첫사랑’(MBC)‘형수님은 열 아홉’(SBS)이 나란히 배치된 것은 이런 극단적 경쟁의 산물.
이같은 전략에 따라 방송사들이 ‘스타 모시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일부 연기자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2일 종영한 ‘풀하우스’의 송혜교는 회당 1,5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고, 후속 작품인 ‘오! 필승 봉순영’의 안재욱도 회당 1,500만원에 캐스팅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양, 오락 프로도 드라마에 올인
드라마 과열경쟁은 방송 장르의 다양화를 해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더욱이 요즘은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 일부 교양 프로그램들까지 자사의 인기 드라마에 관한 아이템으로 채워져 ‘드라마가 없으면 오락, 교양 프로그램도 못 만든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SBS는 ‘파리의 연인’이 대성공을 거두자 ‘김승현ㆍ정은아의 좋은 아침’ ‘야심만만 만 명에게 물었습니다’ 등 각종 프로그램을 관련내용으로 도배했고, 주말 버라이어티쇼 ‘일요일이 좋다’는 고정 코너를 걸러가면서 ‘스페셜’이라는 이름을 붙여 ‘파리의 연인’ ‘장길산’ ‘작은 아씨들’ 특집을 잇따라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방송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이기현 박사는 “방송 3사가 시청률을 의식해 가장 손쉽게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 들일 수 있는 드라마 장르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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