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문제 하나 풀어보자.<보기1> “요건만 갖추면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하겠다.” (1996년 정부)→ “대학이 너무 늘어 모두 망하게 생겼으니 정원을 9만5,000명 줄이고 대학을 통폐합하겠다.” (2004년 정부) 보기1>
<보기2> “골프장 인ㆍ허가기간과 조건을 완화해 앞으로 200~300개 더 늘리겠다.” (2004년 정부)→ “▒▒▒.” (미래 어느날 정부) 보기2>
<문제> 보기1로 유추해볼 때 보기2의 “▒▒▒”에 들어갈 말은? 문제>
정답은 “너무 많아진 골프장을 정리할 대책을 세우겠다”가 아닐까. 독자를 어떻게 보고 이렇게 쉬운 문제를 냈냐는 지탄을 들을만하다. 그런데 이쉬운 문제에 자꾸 틀린 답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독자께 일러 드리려고 이 싱거운 문제를 냈다.
교육부는 96년 엄청난 일을 감행했다. 대학설립 준칙주의 도입이다. 일정한 요건만 충족 시켜면 대학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였다. 대입 경쟁을 어느 정도 완화해보겠다는 생각도있었다.
그러나 그게 과했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학을 만들었다. 이를 제어할 수단은 없었다. 95년 131개였던 4년제 대학은 맹렬한 세포증식을 통해 이제 170개가 됐다.대학은 끝없이 느는데 인구 감소 때문에 대학 입학 희망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학생을 구하기 힘들어진 대학은 일시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많은 대학이 경영난에 허덕이게 됐고 문을 닫는 대학도 생겼다.
대학 산업의 붕괴는 당연히 교육부의 책임이다. 대학교육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하고 유지해 큰 화를 불렀다.더 큰 문제는 이 제도로 대학입시 경쟁이 완화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과열입시 문제의 진원지인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물론 하위권대에 들어가기는 쉬워졌지만 졸업해 봐야 취직도 안 된다.규제완화를 했다면 실익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셈이다. 이런 잘못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교육부는 지난달 31일 ‘되는 대학만 살리겠다’는 취지의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똑같은 잘못을 이번에는 재경부가 저지르고 있다. 바로 골프장 대규모 인ㆍ허가 방침이다. 한편으로는 규제완화의 일환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회복 차원이라고 한다.그러나 이 방안은 잘못된 수요예측과 규제완화에 따른 실익의 부재라는 대학정책에서의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여러 산업과 마찬가지로 골프장업계도 요즘 어렵다. 100만원을 주고도 불가능했던 수도권 골프장의 주말 부킹이 남아돌아 골프장들이 전례에 없던 부킹마케팅을 하고 있다. 내장객이 40%나 준 곳도 있다.불황이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중산층의 몰락과 해외원정골프 확산으로 국내골프 수요가 줄어든 것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골프장수 179개의 배가 넘는 200~300개를 추가로 짓는다면 골프장 산업 앞에 기다리는 것은 붕괴와 공황뿐이다.
경기회복 효과도 의문이다. 골프장을 지으면서 돈이 조금 돌겠지만 골프장에 오는 사람이 없다면 건설 후 경기부양효과는 거의 제로가 된다. 일본도 내수 확대를 위해 85년 골프장을 마구 짓게 한 적이 있다. 결과는 251개 골프장의 줄도산이었다.
온 나라를 대학공화국으로 만들어 얻은 처참한 실패를 교훈 삼아 골프공화국으로 가는 것만은 제발 중단했으면 한다.
이은호 사회1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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