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외교적으로 고구려 문제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간 학술단체들이 힘을 결집해 연구성과를 내는 것이 언제나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발로 뛰며 고구려를 연구해온 서길수(60) 서경대 교수가 10년 동안 맡아오던 고구려연구회 회장직을 최근 내놓았다. 중국의 역사왜곡으로 인해 고구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불붙은 마당에 회장직을 내놓다니 무슨 영문일까?
그의 말을 빌리자면 “고구려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나의) 징검다리 노릇”이 국가의 예산 지원, 고구려 연구층 확대 등으로 적잖이 결실을 보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구려연구회가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정식으로 발족한 것은 1996년. 모태는 94년 서 교수의 연구실에 설립된 고구려연구소였다. 지금 고구려연구회의 학술자문위원 명단에 올라있는 중견 학자들이 당시 초대 회원이었고, 서 교수는 그때부터 회장을 맡아 국제학술회의 개최, 논문집 발간, 고구려 유적지 현지 답사 등을 주도했다.
전공인 경제사를 접어두고 “고구려에 끌려 89년부터 5년 동안 중국 각지를 다니며 모은 자료”를 ‘종자’로 한 고구려연구회의 그 동안 연구 성과는 넉넉치 않은 살림을 해야 하는 민간학회의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알차다.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몽골, 터키 학자들이 참여한 국제학술대회를 해마다 한 차례 열었고, 고구려 연구 논문집도 17종을 냈다. 회원 중 박사만 27명인데, 역사는 물론 건축, 미술, 디자인, 무용, 공예, 문화재보존 등 전공 분야가 다양해 중국 학자들까지도 “학제간 연구”를 특징으로 꼽을 정도다.
“풍찬노숙하다시피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며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는 서 교수는 최근 한중 외교 당국의 고구려사 문제 합의와 관련해 “중국이 역사왜곡을 바로 잡을 의지가 있다고 보는 것은 오판이며 오히려 역사전쟁 초반에서 기선을 제압했다는 중국의 자신감으로 해석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모은 중국내 고구려 유적 사진 1만장과 100시간이 넘는 동영상 등 자료를 정리해 책으로 낼 계획”이라며 “늘 부족한 고구려연구회의 재정 확보에도 힘 닿는 데까지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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