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의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헌법 재판소의 합헌결정과 대법원의 법 존치 판결에 배치되는 견해들을 정부 수뇌진이 연일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나라가 혼란스럽고 국민이 겪는 갈등이 안타깝다.그 말들은 분명하고도 공개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통령이나 장관의 직(職)에 비추어 일방적이고 독단적이다. 사법부가 국가체제와 정체성에 관한 법으로 판시한 데 대해 법을 존중하고 수호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으로서 이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를 “법리적으로 얘기 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제시된 문제에 대해 법리를 떠난 논의를 하자면 국가질서는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것이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밝힌 하나의 견해라고 해도 국론을 극한대치로 몰고 갈 위험성으로 볼 때 경솔한 언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정 장관이 이를 정부의 입장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껏 어느 국무회의, 또는 다른 수준의 어떤 토의나 합의가 정부 내에서 있었는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주무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의 입장도 ‘폐지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국가안보를 총괄하는 정 장관이 이런 사안을 정부의 입장이라고 함부로 공언해서는 안 된다. 후에 취소했지만 법 폐지를 남북대화의 조건으로 주장하는 북한을 향해 우리의 ‘분명한 의지표명’이라고 해석을 붙인 것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안팎으로 민감한 발언을 불쑥 던지고 이를 취소하는 방식으로야 대사를 놓고 합리적 토론을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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