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학교 인질참사는 알 카에다 등이 관여한 국제테러인가, 아니면 단순히 체첸 반군의 비타협 무장투쟁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체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국제테러조직에 선전포고를 했으나, 인질범의 정체와 그 배후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국제테러로 보는 근거로는 우선 인질범들의 용의주도한 준비 등을 꼽을 수있다. 인질범들은 사전에 무기와 폭발물을 교내에 숨겨 놓는 치밀함을 보인 데다, 학교 점거 직후에는 2년 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때와 같은 독가스 공격에 대비해 창문을 모두 깼다. 또 훈련된 개 2마리와 야간투시경을 갖춘 저격수를 24시간 핵심거점에 배치했다. 거의 정규군에 육박하는 화력의 보유, 죽음을 불사하는 행동 등도 국제테러조직과의 연관성을 짐작케 했다.
인질범 30여명 중 10명이 아랍계이고 그 중 1명은 흑인이라는 러시아 당국의 설명도 사태의 국제성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들이 인질극의 주모자로 지목한 마호메드 예블로예프도 국제테러조직과 관련이 많았다는 게 정설이다.
일명 ‘마가스’로도 불리는 예블로예프는 지난 6월 북오세티야 인접 잉규셰티야 공화국 내무부 습격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러시아 남부에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수립을 목표로 하는 와하비파(수니파의 일파)의 지도자로 전해진다. 와하비파는 알 카에다 조직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출생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원했으며 아랍의 테러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이라크 테러의 배후로 요르단인 아부 무사부 알자르카위를 지목하면서 체첸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관련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아직 인질사태의 ‘국제성’을 입증할 구체적 물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살된 인질범을 직접 봤다는 주민들은 흑인은 커녕 아랍계는 아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더욱이 생포된 한 인질범은 5일 러시아 국영TV에 출연해 “알라 덕분에 살았다”고 횡설수설, 그 실체를 의심케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 등 크렘린 지도부가 이번 사태를 국제테러로 몰아감으로써 인질구출 실패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한편, 체첸을 국제테러조직의 중심으로 부각시켜 체첸 공격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동준 기자 d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