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하게 끝난 러시아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인질사태는 모든 것이 의혹과 의문 투성이다.1,000여명이 넘는 최악의 사상자를 낸 당국의 무력진압이 우발적이었느냐 계획된 것이었냐부터 사태진압 과정에서 러시아 언론이 보여준 어정쩡한 보도행태, 1,500여명에 달했던 인질을 사건 초기 300여 명으로 축소해 발표한 이유 등이 규명돼야 할 의문점들이다. 인질범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체첸반군들인지, 이들 외 다른 무장세력이 연계돼 있는지도 오리무중이다.
가장 큰 의혹은 "험난한 협상과정을 각오하고 있다"고 한 당국이 왜 전격적으로 무력진압에 나섰느냐는 것이다. 유력한 해석은 러시아 정부가 대외적으로는 인질의 안전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무력진압을 통해 사태를 해결한다는 이중전략을 취했을 가능성이다.
진압작전 개시 시점이 구조요원들이 학교 내 시신을 수습하러 들어갔다 나오는 사이 폭발음과 함께 총격전이 벌어진 때와 거의 동시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폭발을 어느 쪽이 일으켰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작전은 전혀 계획된 것이 아니었으며 현장을 빠져 나오려던 일부 인질을 보호하려던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촉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특수부대 스스로가 용기를 과시해 벌어졌는데 결과적으로 큰 손실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을 유도해 인명피해에 대한 비난을 희석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진압과정을 보도하는 러시아 언론들의 보도태도도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다. 미국 CNN 방송이나 영국 BBC 방송은 현장상황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한 데 비해 러시아 방송들은 정규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중간중간 속보형식으로 보도하는 데 그쳤다. 진압장면도 BBC 방송이 처음 내보냈다. 러시아 최대 민영방송인 NTV의 한 기자는 "사망자수를 언급하지 말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말해 정부의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건 때 국내외로부터 당국의 대응에 대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으나 이번엔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질범 소속이나 배후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일단 체첸반군이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연방보안국은 범인의 상당수가 아랍국가 출신 '용병들'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체첸 분리독립 요구가 사태의 발단으로 지목될 경우 국제적으로 명분이 약해질 것을 우려한 푸틴 정부가 이번 사건을 '국제 테러'로 몰고가 체첸 사태에 대한 정치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이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국제사회 애도속 "테러범 규탄"
대규모 유혈 참사로 막을 내린 러시아 인질극에 대해 국제사회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국제 사회는 수많은 희생자가 난 데 깊은 유감을 표한 뒤 인질범들을 강력히 비난했지만 진압 작전의 정당성 여부는 대부분 입을 다물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테러집단이 문명 사회를 위협할 것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비극적 예"라고 밝혔다. 그는 진압 방법 논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러시아 국민과 함께 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 지지 의사를 비쳤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어린이를 희생시킨 테러범들의 비인도적이고 극도로 혐오스러운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각각 "테러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양심이 마비된 테러범들이 살인으로 정치 목적을 이루려 했다" "테러와의 싸움에서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압 작전의 적절성 여부는 의문 제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버나드 보트 네덜란드 외무장관이 "러시아 정부가 적절한 결정을 내렸는지 멀리서 판단하기 어렵다"며 우회적으로 의구심을 표하자, 러시아 정부는 자국 주재 네덜란드 대사를 불러 따지는 등 노골적으로 불쾌해 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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