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조각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작업대에 앉아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젊은 여성들.’5일 찾은 경남 양산의 LG패션 신사복 생산공장은 생산라인에 대한 이 같은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곳이다. 마에스트로, 닥스, 파시스 등 LG의 신사 정장을 만드는 이 곳 근로자들은 대부분 서서 일한다. 대부분이 30~40대 주부다.
더 두드러진 특징은 130~160개 공정(신사복 상의)을 거치는 생산 라인이 일직선이 아니라 U자가 이어진 형태라는 점이다. 앞 판을 만들고, 깃을 붙이고, 소매를 다는 등의 공정이 각각의 U자 블록에서 이뤄진다.
블록 안에서 일이 밀린다 싶으면 곧 다른 사람이 달라붙는다. U자여서 작업현황이 한눈에 파악되고, 서서 일해 활동 반경이 넓어진 덕분이다.
“U자와 입식 공정이 하드웨어라면 이를 채우는 소프트웨어는 한 사람이 7~8공정을 소화하는 ‘생산자 다기능화’입니다. 숙달되면 시험을 쳐 ‘으뜨미’로 선정하고 추가 수당을 주어 다기능화를 유도하죠.” 상의 공장을 책임지는 조동성 사장은 “시장 반응에 따라 바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요즘은 생산라인을 흐르는 품종이 시간대 별로 바뀐다”며 “이에 대응하려면 다기능화는 필수”라고 말한다.
시스템 변화 후 근로자 1명의 시간당 생산량은 평균 0.29벌에서 0.38벌로 높아졌다. 전체 근로자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또 생산 중인 옷을 한 바구니 가득 쌓아 다음 공정으로 넘기던 과거 시스템에서는 공장에 깔린 재고만 4,000~5,000벌에 달했지만 이제는 700벌에 불과하다.
의류 공장에 이런 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뻔하다. 인건비가 10분의1에 불과한 중국과의 가격경쟁을 달리 이겨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LG패션 신사복팀의 조원준 부장은 “1992년까지 거래했던 외국 바이어들을 지금 중국에서 만난다. 중국의 신사복 생산 기술도 이미 상당한 수준이어서 생산혁신이 없다면 국내 신사복 공장은 3년 내 전부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LG패션은 1994년부터 공장합리화를 시작,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LG전자의 생산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도입 초기엔 “서서 일하기 힘들다”는 근로자 반발이 거셌고 기술자 3분의1이 직장을 떠났다.
하지만 3개월쯤 지나자 “졸음을 막을 수 있어 오히려 좋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이탈리아 신사복과 경쟁하기 위해 수작업 공정을 더 늘린 마에스트로의 뉴 패턴 개발이 가능했던 것도 이러한 생산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산=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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