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위헌, 헌법불합치 등의 결정을 내린 각종 법률 가운데 상당수가 그대로 방치되거나 개정됐더라도 헌재의 취지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지난해 9월 헌재는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려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직사퇴 시한을 '선거일 전 180일'로 정했던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53조3항에 대해 "지자체장이 아닌 공무원들의 사퇴시한(60일전)에 비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규정"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국회는 지난해 10월 해당 법률을 개정하면서 60일 전이 아닌 '선거일 120일 전'으로 절충 개정했다. 당시 현직 의원의 최대 경쟁자인 지자체장의 운신을 조금이라도 제한하려는 계산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또 헌재가 1999년 '공무원시험에 응시하는 제대군인에게 3∼5%의 가산점을 주도록 한'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8조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가산점을 없애는 대신 제대군인에게 취업 관련 사회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지만 결국 가산점만 없앤 채 보완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5일 헌재가 국회 법사위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연도별 미개정 법률조항 현황'에 따르면 91년부터 위헌,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한정합헌 결정이 내려진 각종 법률조항 중 37개가 지난 7월 말 현재 미개정 상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헌재 결정이 무시당하는 것은 헌재 결정에 맞게 법을 고치도록 하는 강제집행 규정이 없어 각 기관이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법은 '(헌재 결정은) 전 국가기관이 따라야 한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수단을 두고 있지 않다. 지난해 헌재는 헌재법 개정안에 강제집행조항 삽입을 추진했으나 반발에 부딪쳐 검토에만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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