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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206>人共

입력
2004.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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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6일 서울 광화문 옛 경기여고 강당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이 선포됐다. 인공은 일제로부터의 해방 당일인 그 해 8월15일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미군 진주에 앞서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둘러 선포한 것이다. 이 날 '조선인민공화국 임시조직법안'이 통과되며 인공이 선포됨에 따라 건준은 해체되고 9월11일 인공의 조각이 단행되었다.건준이 좌파 세력에 치우쳐 있었다는 우파 쪽의 비판을 의식한 듯, 인공은 주석에 이승만, 부주석에 여운형, 총리에 허헌을 추대·임명하고, 대표위원과 고문위원에 김구 김성수 김병로 신익희 조만식 등 우익 인사들을 다수 추대했다. 그러나 세(勢) 불리를 의식해 미군 진주와 임시정부 귀국을 기다리던 우익 세력은 이를 벽상조각(壁上組閣)이라고 비난하고 취임을 거부했다. 실제로 인공의 최고결정기관인 중앙인민위원회는 3/4 가까이가 좌파와 중도좌파 세력으로 채워졌던 터라, 우파가 가담했다 해도 들러리에 가까웠을 것이다. 인공은 그 해 10월10일 미군정청이 공식적으로 이 '유사 정부'의 승인을 거부함에 따라 해체됐고, 그 주도세력은 이듬해 2월에 발족한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흡수됐다.

인공이라는 약칭은 1945년 오늘 서울에서 선포된 조선인민공화국만이 아니라, 1948년 9월9일 평양에서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정식 국호)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한국전쟁 초기 남한 대부분 지역이 북한 정권의 지배 아래 있던 시기를 '인공 치하(治下)'라 이른다거나 북한 국기를 '인공기'라 부르는 관행이 그 예다. 그래서 더러 두 '인공'이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공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까지 가리키게 된 것은 북한 정권 수립 이후다. 해방기 문헌에서 인공이란 분단 이전에 건준이 주도해 선포한 전국적 유사정부와 국호의 약칭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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