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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우등생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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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우등생 선수

입력
2004.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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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야구팀에는 '순수 아마추어'라는 수식이 붙는다. 말이 대학팀이지 실상은 준(準)프로인 다른 팀들과 구분키 위해서다. 방과후 해질녘까지 두어 시간씩만 연습해온 이 팀이 정규대회에서 마침내 1승을 따내 화제가 됐다.그런데 경사는 두 달 전에도 있었다. 이 팀 김영태(법학4) 선수가 대통령배대회에서 도루왕에 오른 일이다. 소속 선수가 개인타이틀을 거머쥔 것 역시 창단 27년 만에 처음. 내로라하는 스타선수들 틈에서 일궈낸 이 개가는 팀 승리 못지않은 값진 것이었다.

■ 김 선수의 별명은 '흑곰'이란다. 거구답지 않게 날래다고 해서다. 당시 수상 사연이 재미있다. 연세대와 1회전에서 맞붙었으니 뻔한 일. 12대 0으로 대패하고 탈락한 이 경기에서 그는 도루 2개에 3타수 2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대회 종료까지 도루 수가 같은 선수는 여럿이었으나 6할6푼7리에 달하는 타율을 넘는 이는 없었다. 동일 성적이면 타율로 가리는 규정에 따라 그에게 타이틀이 돌아갔다. 말하자면 단 한 게임만 뛰어 따낸 상이었다. .

■원래 그는 청소년대표 전력이 있는 유망주였다. 신일중 시절 유격수로 미 메이저리거 봉중근과 함께 최강전력을 구축했으나, 경기고 2학년 때 부상으로 글러브를 벗었다. 놀라운 일은 이 때부터. 그 때까지 내내 야구 밖에 몰랐던 그는 절망하는 대신 또 다른 미래를 위해 선뜻 책을 잡았다. 워낙 기초가 없어 중학 과정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그러고도 삼수 끝에 일약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 외국엔 공부 잘하는 운동선수가 적지 않다. 미국의 포드 전 대통령은 대학풋볼 MVP였고, 4년 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고어와 경합했던 브래들리 상원의원은 프린스턴과 옥스퍼드대학원 출신의 수재면서도 NBA 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에도 의사, 변호사들이 즐비하다. 고시를 준비하는 김 선수는 이번 대회기간에도 내내 법전을 끼고 다녀 눈길을 모았다. 그러니 어쩌면 곧 정규 대학야구 선수출신의 법조인이 나올 지 모를 일이다. 왜곡된 우리 학원 스포츠 풍토에서 그가 단연 돋보이는 이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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