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만들기 신드롬’에 빠진 부녀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자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버지는 딸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쇠고랑을 차는 사건이 발생했다.국내 최고의 통신사에 최연소 합격해 승승 장구하던 A(30)씨는 1996년 이혼한 아버지 B(57)씨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옥탑방 생활을 시작했다. A씨는 아버지가 14년간 지방세무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빈털터리였기 때문에 모든 생계를 책임졌다.
A씨는 그러나 격무에 시달리는데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번번이 미끄러지자 지난해 5월 갑자기 사표를 냈다. 팀장까지 맡으며 건실한 생활을 했지만 대학 중퇴인 자신에겐 더 이상의 승진은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퇴사한 A씨는 최근 몇 년 사이 서민들의 인생목표가 되다시피 한 ‘10억원 만들기’에 골몰했고 재취업은 관심 밖이었다. A씨는 아버지에게 “1년 내 10억원을 만들지 못하면 같이 죽자”고 했고 아버지도 “그러자”고 다짐했다.
이들은 수중에 있는 전재산인 A씨 퇴직금 5,000만원 가운데 2,500만원을 투기성이 강한 코스닥업체 주식에 투자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주식을 샀다가 다시 되파는 초단타 매매를 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깡통계좌 뿐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통계분석으로 숫자를 찍어 매주 로또에도 30만원씩 투자했지만 당첨금이 100만원 정도인 3등에 3번 당첨됐을 뿐이다.
결국 이들의 통장계좌 잔고는 지난달 22일 ‘0’가 됐다. 부녀는 이날 옥탑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 A씨가 먼저 목숨을 끊으면 아버지 B씨가 시신을 수습하고 뒤따르기로 했다. A씨는 ‘이제 갈 때가 돼서 갑니다’라는 유서를 남긴 뒤 넥타이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는 이틀 동안 딸의 시신을 옆에 두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시다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에 의해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4일 딸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아버지 B씨를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10억 만들기’는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들에겐 신기루일 뿐임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씁쓸해 했다.
안형영 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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