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할아버지의 담뱃대는 참으로 길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처음 본 담뱃대이기도 하다. 두 살 차이의 작은 할아버지는 권련을 태우셨다.내가 다른 사람의 담뱃대를 처음 본 것은 아랫동네 영래 할아버지의 것이었다. 영래 할아버지의 담뱃대는 우리 할아버지 담뱃대의 절반 길이만 했다. 세상에 무슨 담뱃대가 저렇게 짧을까. 곰이라고 불릴 만큼 커다란 몸집에 짧은 담뱃대로 뿍뿍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 참 희극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느 여름 복날 우리집 마당에 모인 근동 할아버지들의 담뱃대 대부분이 우리 할아버지와 영래 할아버지의 담뱃대 중간쯤 길이였다. 다음해 단오장에 나가서 눈여겨본 좌판의 담뱃대 역시 그랬다. 그런데도 내 눈엔 그것들이 오히려 기준보다 짧아 보였다.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긴 담뱃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른들 모두 기준보다 짧은 담뱃대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만물의 척도는 언제나 내 것이다. 할아버지의 담뱃대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식당의 숟가락과 젓가락 역시 그렇다. 그것들은 늘 기준보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길거나 짧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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