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책읽기강대진 지음
작은이야기 발행/2만원
“한마디로 이 책은 다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이대로는 거의 읽을 수가 없는데, 원저가 워낙 좋은 책이니 말이다.” 누군가가 번역해 놓은 책에다 이런 평을 던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그것도 대중적인 책이 아니라 전문가 수준은 되어야 볼 고전이라면 말이다. 필시 번역자는 해당 분야 전공자일 테고, 번역에 들인 공이 적지 않을 테니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연구로 서울대 대학원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강대진씨는 서양신화 분야의 국내 번역책들을 꼼꼼히 읽고 잘못된 번역을 일일이 잡아내 문제점을 지적한 글들을 묶어 ‘잔혹한 책읽기’라는 보기 드문 번역 비평서를 냈다. 대상은 ‘그리스 미술’ ‘라틴문학의 이해’ ‘로마제국사’ ‘신의 가면’ ‘사생활의 역사’ ‘창조자들’ ‘중세의 가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등 서양고전분야에서는 명저로 손꼽히는 책 12권이다.
남의 번역을 꼬집는 글을 쓰거나, 그걸 ‘잔혹한 책읽기’ 식으로 출판까지 하면 우리 학계 풍토로 봐서 “욕 먹기 딱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강대진씨를 용기 있는 사람이라 부를만하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용기는 오만이나 만용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틀렸는지 어땠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어디 물어볼 데도 없이 대충 옮겨놓고 불안해 하는 번역가들과, 이들의 글을 읽고 자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예비 번역가들에게 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목적을 밝혔고, 책마다 일일이 역자의 수고를 칭찬했다.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번역이 이상한 곳, 틀린 곳만 지적하고’ 있는 자신의 책을 읽고 그 번역서의 전체 가치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고유명사 표기의 잘못, 적당하지 않은 용어 선택, 지나친 의역이나 너무 딱딱한 직역 등은 공통적으로 지적된 부분이지만 12권 중에서 저자가 특히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 책이 4권 있다. 우선 저자가 다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동문선에서 나온 ‘라틴문학의 이해’. ‘이만한 부피의 것으로는 거의 최상이라고 할 만큼 훌륭한 라틴문학 개론서’라고 원서를 호평한 강씨는 번역서가 ‘부적절한 용어 선택과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때로는 앞뒤의 내용과 모순되는 문장들, 사실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인한 오역’ 때문에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민음사에서 낸 ‘창조자들’(1권)은 틀린 번역이 너무 많아 거의 재번역에 해당하는 손질이 필요하고, 역시 민음사에서 나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도 라틴어 문장 번역이 모두 잘못된 데다, 이 책이 17년 동안 출판사 몇 곳을 옮겨가며 개정되었으면서도 오류가 별로 수정되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또 한길사에서 나온 ‘로마제국사’는 독자가 읽을 수 있으려면 많은 각주와 보충 어구가 필요한데도, 이를 소홀히 해 ‘가치 없는 책’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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