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국가보안법 존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판결을 내놓으면서 국보법 개폐를 둘러싼 열린우리당 내 이념논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폐지론자들과 개정론자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상반된 평가에 머물지 않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도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대법원 판결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국보법 폐지 입법 추진모임'의 간사인 우원식 의원은 3일 "아직도 북한 동조세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레드 콤플렉스"라고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또 김원웅 의원은 "대법관들은 민족문제와 분단에 대한 고민 없이 기득권에 취해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국보법의 안정적 개정을 추진하는 모임'(안개모) 소속의 유재건 의원은 "대법원은 특수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감안해 판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로 대법원의 판결을 옹호했다.
1일 오전 '안개모'가 '정부 참칭' 규정 유지(2조), '찬양·고무'에 대한 처벌은 삭제하되 '선전·선동행위' 처벌은 유지(7조), '불고지죄'의 경우 소극적인 경우만 삭제(10조)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표한 뒤에는 양측간 이념 공방이 본격화하고 있다.
폐지론자인 임종석 의원은 "당초 개정안에는 '정부 참칭' 규정이 삭제돼 있었고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반인륜적이라고 비판받아온 불고지죄를 삭제하자는 입장 아니냐"며 "'안개모'의 개정안은 존치와 다를 바 없는 의견"이라고 혹평했다. '추진모임' 소속의 한 초선의원은 "전면개정은 고사하고 한나라당의 소폭 개정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라며 "우리당의 스펙트럼이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개모'의 간사인 안영근 의원은 "논란이 되는 규정은 모두 바꾸고 국가안보의 상징적인 틀만 남겨놓은 것"이라고 자평한 뒤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면 소득 없는 정쟁으로 불안감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천정배 원내대표는 "당내 개정론자들의 방안은 수구파들의 주장과는 다르다"며 이념논쟁 확산을 경계했고, '추진모임'과 '안개모'측도 내주에 간담회를 열어 양측의 이견을 좁혀보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지난달에 '추진모임'의 폐지서명 작업 중단 요청 공문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데다 최근에는 당내 법사위원들이 폐지를 전제로 형법 보완사항들을 점검한 데 대해 일부 개정파 의원이 당직 사퇴까지 언급하는 등 일각에서는 양측간 입장 차이가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획과 달리 당론이 결정되지 못한 채 폐지안과 개정안이 동시에 제출될 가능성도 상당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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