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9월4일 스페인 무용가 라 아르헨티나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36년 프랑스 바욘에서 졸(卒). 라 아르헨티나의 본명은 안토니아 메르세 이 루케다. 메르세는 아버지 성(姓)이고 루케는 어머니 성이다. 그 사이의 '이(y)'는 영어의 and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접속사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출신의 아버지 마누엘 메르세와 카스티야 지방 출신의 어머니 호세피나 루케 역시 직업 무용가였다. 이들의 딸 안토니아는 아홉 살 때 마드리드 왕립오페라극장에서 발레리나로 데뷔하면서, 태어난 나라 이름 아르헨티나를 예명으로 삼았다. 아르헨티나 앞의 '라(La)'는 스페인어 여성정관사다.고은광순이니 조한혜정이니 신윤동욱이니 하는 이름에서 보듯, 1990년대 후반 이래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관행이 일부 여성주의자들 사이에 느릿느릿 퍼져나가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관행이지만, 라 아르헨티나의 본명 안토니아 메르세 이 루케에서 보듯 스페인어권에서는 심상한 일이다. 예컨대 1930년대 말 스페인 내전의 와중에 파시스트들에게 살해된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가르시아는 아버지 성이고 로르카는 어머니 성이다. 또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 문학의 챔피언으로 꼽히는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경우도, 가르시아가 아버지 성이고 마르케스가 어머니 성이다.
라 아르헨티나는 14세에 발레를 포기하고 스페인 민속무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플라멩코 춤을 현대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마누엘 데 파야, 가르시아 로르카, 엔리케 그라나도스 등의 전위 예술가들과 협력하며 무용을 종합무대예술의 핵심 부분으로 끌어올렸다. 전통적 집시 춤들은 라 아르헨티나의 세련된 안무를 거쳐 현대의 가장 강력한 무대예술 장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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