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골이 깊은 가운데 ‘더부살이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회사 여유자금을 사옥 등 부동산보다는 생산설비 확충에 투입, 미래에 대비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최근 전라남도와 투자협정을 맺고 나주시 금촌면 3만평 부지에 하루 300톤의 원유처리 능력을 갖춘 호남 최대 유가공 공장을 짓기로 했다. 특히 남양유업은 공장 설립 비용 1,000억원을 모두 자체 보유 현금으로 해결키로 해 주목을 받고 있다.
남양유업이 현재 보유한 사내 유보금은 5,000억원(자본금 대비 1만%). 하지만 남양유업은 본사 사옥 없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1가 대일빌딩에 32년째 세를 들어 살고 있다. ‘공장은 필요해도 사옥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의 철학이다.
장남인 홍원식 회장도 “회사의 열정과 자금, 인력을 한 곳에 모으면 역량은 배가되지만 여기저기에 힘을 배분하면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며 ‘사옥 불필요론’을 강조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분유캔 제조업체나 사료공장 등을 세우자는 내부 의견도 많지만, 제품의 다양화는 추진하되 사업 다각화는 철저하게 배격한다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말했다.
매일유업도 마찬가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삼환빌딩 15층 가운데 5개 층에서 전세살이를 하고 있지만 지난해 300억원을 투입, 국내 최초의 최첨단 무균생산시스템(ESL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2002년 5월에는 농협(목우촌우유)이 운영하던 청양공장을 인수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전북 고창군 상하면 2만3,000여평 부지에 연간 1만톤 이상의 자연치즈를 생산할 수 있는 상하공장을 신축하는 등 대규모 시설 투자를 계속해왔다.
창업주인 김복용 회장이 “사옥 지을 돈이 있으면 공장을 하나 더 지으라”고 강조한데 이어 장남인 김정환 사장도 “기업이 생산을 통해 돈을 벌어야지 부동산 등으로 술수를 써서 돈을 벌어선 안 된다”고 강조해 사옷 짓자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롯데햄우유는 아예 서울 서초구 잠원동 설악아파트 단지내 복지센터 일부를 임대해 본사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다. 본사 면적이라고 해봐야 겨우 400여평. 그러나 롯데햄우유는 2001년 해태우유 대구공장을 인수한데 이어 김천ㆍ청주ㆍ전주 공장 등을 계속 증설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준호 대표이사 부회장이 대선주조를 인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밖에 현대백화점은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내 금강쇼핑센터 3, 4층을 본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알부자들은 화려한 외형 보다는 실속을 중시한다”며 “불황일수록 속이 꽉찬 알짜 기업들의 행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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