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소설에서 큰 느낌을 만나 울렁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작가의 얼굴을 그려보게 되는 때가 있다. 그래서 더러는 기어이 사진을 찾아보기도 한다. 독자는 작품으로 만난 작가의 내면과 그 속에 담긴 진실을, 외모나 목소리 등을 통해 기어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영인문학관이 우리시대 작가들의 얼굴들로 ‘얼굴의 문학사-모노크롬에서 마스크까지’란 전시회를 마련했다. 얼굴로 보는 우리 문학사이자, 글이 작가를 닮고, 작가가 글을 닮아간다는 상식을 확인시키는 행사다.
전시회에는 소설가 김동인에서부터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이고 있는 현역들에 이르기까지 문인 80여명의 초상화와 자화상, 흉상, 마스크, 캐리커처 등 130여 점이 나온다. 작품들은 대개 가족들의 내밀한 사연과 동료 선후배, 친분 깊은 화가들이 정을 담아 남긴 것들이다.
소설가 최정희가 아들을 잃고 탈진한 듯 비탄에 잠긴 모습은 딸 김채원(소설가)이 그렸고, 소설 ‘분지’가 북한신문에 전재된 일로 기소(67년)됐던 남정현이 재판정에서 검사를 바라보는 표정은 화가 신학철이 그렸다.
소설가 오영수의 데드마스크는 그의 아들 오윤(조각가)이 직접 석고로 떴다. 젊은 시절 빼어난 미모로 숱한 문인들을 설레게 했던 김남조 시인의 초상화는 부군 김세중 화백이 그렸고, 홍윤숙 시인의 얼굴은 외손녀가 사진을 응용해 작품화했다.
소설가 전상국이 동인문학상을 탈 때 시상식장에서 그렸다는 작자미상의 초상화, 서정주 시인이 그린 자화상도 흥미롭다. 300권에 육박하는 문학과 지성 시인선의 캐리커쳐를 번갈아 그려온 이제하와 김영태 시인이 그린 소설가 오정희의 얼굴로 두 사람의 다른 시 세계를 엿보는 묘미도 있다.
김영태 시인은 김규동 송수권 문정희 이병주 최인훈 박완서 최인호 조해일 윤흥길 정현종 황동규 오규원 신대철 등 13명의 개성 있는 캐리커쳐들도 내놓았다.
문단의 화재(畵才)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소설가 김승옥은 이어령 교수와 소설가 김채원 김지원 자매의 캐리커쳐로 참여했다. 2001년 문학관 개관전시회때 소개된 장욱진 화백의 마해송, 김기창 화백의 신석초, 변종화 화백의 서정주, 오수원 화백의 박목월 초상화 등도 만날 수 있다. 주요한안수길 구상 조병화 박경리 고은 등의 흉상과 부조도 있고, 김동인 염상섭 김동리의 유품 등도 함께 전시된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은 “얼굴에 나타난 문인들의 개성과 내면 풍경을 통해 한국 문학사를 색다른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9월11일부터 한 달간(월요일 휴관) 열리며, 이어서는 문인들의 사진전이 한 달간 개최될 예정이다.
/최윤필기자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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