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타고 어디 가요?윤열수, 이호백 기획ㆍ글
재미마주 발행/9,000원
그림책 전문출판사 재미마주는 우리 문화를 소재로 한 그림책을 정성껏 펴내고 있다. 우리 전통과 정서에 뿌리를 둔 것이라야 우리 아이들에게 피가되고 살이 될 거라는 신념에서다. 하기는 우리 고유의 것을 어려서부터 느껴야 우리 것과 남의 것이 어떻게 다른지 편견 없이 바로 보는 눈이 틔어국제적인 감각도 갖게 될 터이다.
재미마주의 민화그림책은 그런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다. 조선 후기 평민들 사이에서 유행한 민화를 갖고 만든 이 시리즈는 지난 해 가을 ‘토끼의 소원’으로 처음 선보였는데, 이 책은 지금까지 3,600부 정도 매달 300권이상 꾸준히 팔리며 호평을 받고 있다.
민화그림책 제 2권으로 ‘무얼 타고 어디 가요?’가 나왔다. ‘토끼의 소원’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또 한 번 홀딱 반할 만큼 멋있다. 15점의 옛그림을 골라 단순하지만 짜임새 있게 엮었는데, 한결같이 정겹고 황홀하여 조상들의 미감이 이토록 뛰어났던가 감탄하게 만든다.
그냥 도록처럼 꾸몄으면 딱딱했을 텐데, 단순하지만 짜임새 있게 엮어서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페이지마다 숨은 그림 찾기 퀴즈도 들어있어 여러 번 볼수록 더 재미있다.
책 속 주인공들은 다들 무엇인가를 타고 간다. 소를 타고 피리 불며 가는아기, 두루미를 타고 마을 잔치에 놀러 가는 누나, 꽃사슴 타고 꽃나비 구경 가는 형아, 봉황 타고 하늘나라 놀러 가는 아저씨, 새우 타고 물 속 나라 구경가는 아주머니, 나귀 타고 한가롭게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할아버지….흰구름이나 나뭇잎을 타고 가는 신선도 보인다.
어디로 가는지는 각 장면의 다음 장을 넘기면 펼쳐진다. 모내기가 한창인봄 들판은 풍속화로 보여주고, 물속 나라는 온갖 물고기가 뛰노는 민화로 만난다. 봉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아저씨를 맞는 것은 구름 위에서 춤추고 연주하는 선녀와 신선들이다.
특히 꽃사슴 탄 형아 그림을 넘기는 순간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100가지 나비 그림’이라는 뜻의 민화 ‘백접도’(百蝶圖) 안에 온갖 나비가 날고 어여쁜 꽃들이 한들거리고 있다.
정교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런 그림은 시집 안 간 규수나 신혼부부 방을 장식해 사랑의 기쁨과 부부 화합을 빌던 것이다. 민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소박한 소망을 담고 있으니 예컨대 사슴이나 복숭아는 불로장생의 꿈을, 잉어나 메기는 부귀다복을 가리킨다.
그림 속 여러 상징들의 숨은 의미와 거기 얽힌 옛이야기까지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겠고, 모르고 그림만 봐도 머리 속으로 무궁무진 이야기를 엮어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책은 상상과 판타지의 놀이터라고 할 수있다. 새우를 타고 물 속 구경을 가다니! 두루미 타고 하늘을 날다니!
‘에이, 거짓말!’ 하고 코웃음치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놀라운 상상이 현실의 소망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살아 숨쉬던 옛 사람들의 감수성은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거대한 에너지 창고다. 우리는 얼마나 귀한 것을 놓친 것일까.
/오미환기자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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