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동안 이어졌던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초등학교 인질극은 진압작전 개시 40여분 만에 러시아 군의 전격적 유혈 진압 작전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전광석화 같은 작전을 두고 러시아군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인질들의 갑작스런 탈출이 임기응변식의 우발적 진압을 부른 것인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인질범들이 인질들을 풀어 주고 어수선한 틈을 타 탈출을 시도했던 것은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인명피해는 영국 I-TV는 현장에 있던 인질들의 말을 인용, "체육관 안에만 최소한 100여구 시신이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병원으로 옮겨진 부상자도 300명을 넘어서고 있어 인명 피해는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진압작전 개시
이날 오후 1시5분(이하 현지시각)께 학교근처에서 돌연 2,3차례 큰 폭발음이 땅을 뒤흔들고 바로 자동소총 총격음이 계속 이어졌다. 이어 중무장한 러시아 특수부대가 학교 건물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인질범들이 학교 내 시체 수습을 허용, 구조요원들이 학교로 들어간 직후였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러시아 당국이 이날 오전 진압 작전을 당분간 배제한다고 밝힌 데다 1일 인질범들의 학교 장악 과정에서 2명의 여성 인질범이 자폭해 20여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인질범들의 또 다른 자폭이 아니냐는 추측만 나왔다.
어린이 인질 탈출 시작
1시17분께 30여명의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뛰어 나왔다. 어린이들은 현장에 마련된 구호소 야전 침상에서 응급 치료를 받은 뒤 곧 이어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피범벅이 된 어린이도 적지 않아 인질 120여명이 사망한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사건의 악몽이 되풀이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어린이들은 인질들이 물과 음식 공급을 끊고 더운 날씨에 체육관에 몰아 넣었던 탓인지 대부분 속옷만 걸쳤고 물부터 찾는 모습이었다.
러시아군 학교 장악
1시30분께 러시아군 수송용 헬기 4대가 학교 상공을 선회하다 학교 지붕을 파괴하면서 특수부대원 100명이 투입된 본격적인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첫 폭발음이 들린 지 40여분 만인 1시 56분 러시아군이 학교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질범 저항 계속
인질범들은 인질 틈에 섞여 탈출을 시도, 학교 남쪽의 철로 교차점쪽으로 달아나면서 교전을 벌였다. 러시아군의 추격으로 인질범 5명이 사살됐지만 인질범 13명은 도시 남부의 한 집을 점거한 채 러시아군에 저항을 계속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외신=종합
■푸틴 이번에도 "테러와 타협은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에도 인질사건을 강경 진압, 테러집단 특히 체첸 반군과는 일말의 타협도 없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어린 학생들이 인질로 잡혀 있어 정서적 충격이 컸던 데다 푸틴 대통령이 2일 이례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질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밝혀 타협의 여지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역시 위험한 속전속결 방식이 동원됐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껏 수십 차례 발생한 크고 작은 인질극에서 단 한번도 테러집단과 타협한 적이 없었다. 협상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푸틴식 협상은 선제공격의 시간을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사태 때에는 700여명의 인질이 잡혀 있던 극장 안에 독가스를 투입해 진압, 인질범 41명과 함께 관람객 129명이 희생됐다.
1995년 체첸 변경의 부데노프스크 병원 인질극 사건 때도 100여명의 인질이 숨졌고 96년 페르보마이스코예 인질극 때도 체첸 반군과의 교전과정에서 100여명이 희생됐다.
의아스러운 점은 이런 푸틴식의 무지막지한 강경진압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르게 테러에 대해서만 '숙명론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3일 분석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잇단 테러에 질려 테러는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푸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질극이 벌어지고 강경 진압되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하는 경향도 보여왔다.
결국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도 희생을 감수하면서 테러와의 비타협이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러시아 국민들이 이번 작전을 '최소한의 희생으로 해결됐다'고 평가한다면 푸틴 대통령은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정보 기관 책임자 경질 요구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동준기자
■인질 사태 진압 주역
3일 불과 40분만에 북오세티야 학교의 인질 사건을 제압한 주역은 러시아의 최정예 특수부대인 '알파부대'와 '오몬'이다.
대테러 전문가들로 구성된 알파부대는 연방보안국(FSB) 차장이 직접 지휘하며, 모든 테러 사건 해결을 주도하고 전쟁에서도 전위대 역할을 한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대통령궁을 습격, 대통령을 비롯해 100여명을 사살하는 등 74년 발족 이래 국내외 분쟁의 해결사임을 자임해 왔다. 특히 95년 10월에는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현대그룹 연수생 버스 인질 사건을 말끔히 처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해 체첸 변경의 한 병원에서 벌어진 인질 사건 때는 민간인 등 100여명의 희생자를 내는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91년 소련 보수파 쿠데타 때는 의사당에 포진했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등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거부, 쿠데타를 무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명 '검은 베레'로 알려진 오몬은 내무부 산하 기관으로 우리의 '경찰 특공대'에 해당한다. 조직 범죄와 마약 밀매단 소탕이 주임무여서 소련 해체 이후 발호한 마피아가 가장 겁내는 조직이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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