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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보름의 불면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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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보름의 불면이 남긴 것

입력
2004.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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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났다. 보름동안의 불면도 끝났다. 도대체 무엇을 보기 위한 불면이었을까? 신들의 땅으로 다시 돌아간 21세기의 첫 올림픽에서 신들의 모습을 보기라도 기대했던 것일까?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아테네. 신화의 울림을 간직한 그 이름에서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희망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신화의 땅에서 벌어지는 순수한 육신들의 향연을 통해 다시 한번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기원으로 돌아온 인간들이 마련한 21세기의 바카날리아에 신들이 함께 해주기를. 그래서 아직도 이 별에서 끊이지 않는 살육과 비탄을 종식시켜 주기를. 우리가 종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주기를….

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 당했다. 신화의 땅은 땅일 뿐. 승리에 대한 배타적인 집착과 그 집착이 낳은, 고의성의 혐의가 짙은 판정들과 비겁한 경기장면들이 결국 꿈을 버리게 만들었다.

모든 경기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올림픽이, 아니 올림픽만이라도 보여주었어야 할 순수한 인간의 의지와 열정을 망가뜨려놓기엔 그걸로 충분했다. 신은 역시 죽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 신은 인간을 버리고 다른 별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일까.

신이 보이지 않자 두려움을 버린 부시가 나섰다. 이라크의 축구 4강 진출이 자신이 판 벌린 전쟁 때문이었단다. 개도 웃을 일이다. 그러고 보니 숱한 판정시비 중 몇 개의 이면엔 미국의 그림자가 은근히 비친다.

공화당으로선 금메달이 필요하긴 했겠다 싶다. 우리도 한때 그랬으니까. 하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고 싶진 않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아름다웠다. 내겐 특히 한국의 여자핸드볼과 이신바에바와 리마가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을 믿었으며 우아했다. 그들을 보며 가까스로 희망을 다진다. 결국 우리 손에 달린 것이다. 이 별의 운명은.

/김경형ㆍ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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