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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개성공단과 전략물자

입력
2004.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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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사업이 시범단지 공장 착공을 1개월정도 앞두고 ‘전략물자 제한규정’이란 벽에 부딪혔다. 미국측은 최근 우리 정부가 1차로 제시한 반출물자 품목 가운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승인할 방침임을 전해왔지만 이 문제는 두고두고 개성공단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개성공단을 보는 양국의 입장은 미묘하다. 한국은 남북화해와 평화공존,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의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국내 중소기업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개성공단을 추진하고 있다.미국은 북핵문제로 북한과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개성공단 조성사업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협조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략물자 제한규정이 불거진 것은 개성공단사업에 대한 미국의 표면적 제한적 양해에도 불구하고 북핵이란 큰 장애물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어렵게 미국의 양해를 얻어 추진해온 사업이지만 시범공단 입주를앞둔 시점에 만난 전략물자 제한규정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놓고 북한은 대놓고 미국을 비난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미국을 설득하고 양해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만 봐도 알수 있다. 최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이 전략물자 제한규정을 적용해 개성공단사업에 훼방을 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이 개성공단 입주업체가 반출하려는 정밀기계와 고성능 중앙연산처리장치(CPU)를 탑재한 컴퓨터 등이 바세나르협정(Wassenaar Arrangement)과 미국의 수출통제법의 전략물자 제한규정에 저촉되는 물품이라며 엄격히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에 전달한 데 대한 반응이다.

바세나르협정은 첨단 전략물자나 기술이 분쟁국가 또는 테러지원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냉전시대의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를 대신해 지난 1997년 체결됐다.우리나라는 이 협정에 서명한 33개국 중 하나이며, 북한은 이 협정에 의해‘위험국가’로 분류돼 전략물자 수출통제 대상에 올라있다.

반출 제한 품목 중에는 펜티엄Ⅲ급 컴퓨터도 포함돼 있다. 이미 북한 내에서 중국 등과의 합작으로 펜티엄Ⅳ급의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펜티엄Ⅲ급 이상 컴퓨터 반입제한은 사실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개성공단사업에 대한 속도조절 요구에 이어 반입 물자와기술에 대해 바세나르협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반입물자나 기술에 대한 우려보다는 개성공단이 갖고 올 파급효과와 이에 따라 북한이 얻게 될 이득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개성공단사업으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북핵 문제와 관련,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북한이 개성공단사업으로 벌어들인 외화를 엉뚱한 용도로 사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시각이다.

다행히 미국측이 개성공단사업이 전략물자 제한규정으로 차질을 빚지 않도록 협조하겠다는 뜻을 방미중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에 희망을 걸고 있는 우리 중소기업으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사업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전략물자 제한규정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미국은 이 규정을 마스터키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여하히 이 문제를 조용하고 매끄럽게 해결하느냐에 개성공단사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 북미관계 개선을 유도하면서 한미관계를 지혜롭게 풀어가야 할 이유다.

방민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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