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법원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판결은 단순히 국보법 개폐논쟁에 불을 지피는 것을 넘어 정치권과 사회 일각의 진보-보수 갈등에 사법부까지 동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때문에 사법부가 이런 문제에까지 휘말릴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대법원 판결은 무엇보다 국보법 폐지 움직임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한 측면이 강하다. 때문에 국보법 존치론에 한층 힘을 실어 줄 것이란 전망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6일 국보법 제7조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을 결정하고, 김승규 법무장관도 취임 후 국보법 폐지반대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대법원의 의지를 감안한다 해도 그 입장을 표명하는 방법, 수위가 상궤를 넘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대법원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국보법 폐지논리를 반박한 것은 사법부가 입법부의 입법활동에 이례적으로 개입한 것이란 지적이다. 보통 판결문은 기소된 구체적 사안의 사실관계를 밝히고, 이에 대해 해당 법 조항을 적용해 유·무죄를 가리는 방식으로 짜여진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를 인용해 상고를 기각한데 이어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과 다른 견해가 있다고 소개한 뒤 이를 다시 조목조목 비판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처럼 형식을 파괴한 판결은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원칙에서 볼 때 정치적 의도로 해석될 소지까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헌재도 국보법 합헌 결정 과정에서 "입법부가 헌재의 결정과 국민의 의사를 수렴, 입법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례적 의견제시를 했지만 이번 판결문은 이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대법원의 판결내용 가운데 특히 "오늘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 통일전선의 형성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직시할 때 체제수호를 위해 허용과 관용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부분은 지나친 표현이란 지적이다. 북한 동조 세력이 증가했거나 진보진영의 통일운동이 북한과 접근했다는 구체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논리대로라면 이들은 국보법을 이미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파문이 커지자 손지호 대법 공보관은 "모든 판결문은 사건을 맡은 주심과 대법관의 합의를 통해 작성되는 만큼 해당 재판부 전체의 입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판결을 내린 이용우(주심), 박재윤, 이규홍 대법관 3명의 판단으로 제한한 셈이다. 손 공보관은 "판결문에 나온 내용 외에 판결 배경이나 이유 등에 대해 현재로선 더이상 언급할 것이 없고 판결문 자체로서 이해해 달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시민단체들 엇갈린 반응
국보법 폐지를 주장해온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며 보수일색의 대법원을 수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에서 “국보법 사수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치적 판결”이라며 “대법원 개혁을 위해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이 ‘국보법을 폐지하지 않고 형법을 만들면 법률 중복의 문제가 생긴다’고 언급한 것을 대법원이 기억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대법원이 입법정책에 대한 호ㆍ불호를 표현한 것은 정치적 영역을 침범, 3권 분립의 원칙을 스스로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보수단체인 자유시민연대는 “국보법은 인권침해 소지가 없고, 국가안녕을 위해 반드시 유지돼야 할 최소한 안전장치임을 대법원이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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