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여름이라고 불러도 좋을 날씨지만, 극장가는 벌써 추석맞이를 시작했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세 편의 한국영화 중 두 편이 바로 가족영화. 제일 먼저 소개할 ‘가족’은 정공법의 영화다. ‘눈물의 여왕’ 수애가 주연을 맡긴 했지만, ‘가족’은 예상외로 담담하다.데뷔작치곤 꽤 울림있는 연기를 보여준 수애와 더불어 이 영화에 주름과 깊이를 더한 배우는 바로 주현. 그는 과장된 액션이나 사자후 없이, 수많은 감정이 차곡차곡 담긴 표정만으로도 아버지의 초상을 관객들의 가슴 속에 깊숙이 전달한다. 있는 그대로의 가족에 카메라를 들이댄 ‘가족’은 세련됨에서 한 발자국 양보했다면, 진솔함에서 2보 전진한다.
‘돈텔파파’는 다행히도 걱정(?)했던 만큼 ‘쌈마이’는 아니다. ‘15세관람가’여서 주인공을 맡은 유승호는 정작 보지 못했다는(사실일까?) 이영화의 벤치마킹 목표는 언뜻 보기엔 ‘보스상륙작전’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돈텔파파’엔 유승호가 있다는 사실. 이 아역배우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영화는 가까스로 구원 받았고, 정웅인이나 임호 같은 ‘성인배우’들의 연기 또한 기대 이상이다.
‘웰메이드 영화 포기 선언’이라는 파격적인 헤드카피는 아마도 관객의 기대치를 극단적으로 끌어내린 상태에서 의외의 한방을 먹이려는 잔꾀 아닐까 싶다. ‘알포인트’에 이어 또 한편의 감우성 주연 영화인 ‘거미숲’은 인간의 기억과 죄의식에 관한 미스터리 영화. 온 가족이 보긴 조금 망설여지지만, 외롭게 퍼즐을 즐기는 관객에겐 권할 만하다.
제목만으로도 먹고 들어가는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는 ‘둘이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면 볼만한 영화. 반면 제목은 좀 남사스럽지만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즐겁기 그지없고 꽤 진지한 면도 있는 재치만점의 작품이다. 틴에이저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럴 듯하고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퀸카로 살아남기 위한’ 5가지 법칙은 꽤 새겨들을만하다. 로버트 드니로가 산부인과 의사로 등장하는 ‘갓센드’는 인간복제에 관한 다소 맥 빠지는 스릴러. 드니로 팬이라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네델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 한장에서 출발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 만듦새와 절제된 감정,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의 처연한 표정연기가 완벽히 조화를 이룬 영화. 진부한 멜로드라마에 지친, 좀더 섬세한 감정의 드라마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만나야 할 걸작이다.
마지막으로 철학 혹은 썰렁한 유머의 애니메이션 ‘맥덜’은, 요즘 영화가 너무 개성없이 밋밋하기만 하다고 불만에 차 있는 관객이라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음식 주문하는 장면은 근래 보기드문 ‘하이 코미디’다. 이번 주엔 맘먹고 모든 개봉작을 소개해봤다. 꽤 괜찮은 작품들이 눈에 띠여 좋긴 하지만, 그 영화들이 얼마나 극장에서 버텨줄진 모르겠다. 요즘 드는 생각 하나. 개봉작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괜찮은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 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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