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끌어온 혈우병 환자의 국내 혈액응고제제에 의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논쟁에 대해 전문기구가 조사결과를 내놓았으나 논란만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감염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애매한 결론인데다 과학적, 의학적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질병관리본부 관계자와 의ㆍ약학계 전문가로 이뤄진 혈액제제에이즈감염조사위원회는 1일 기자회견에서 “1990~93년 에이즈 감염이 확인된 혈우병 환자 10여명에 대해 연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부 환자는 국내 혈액응고제제에 의해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감염자 5명이 감염추정기간에 외국산 혈액응고제제를 사용하거나 수혈 받은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국내 혈액응고제제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높게 보고있다.
또 투여된 혈액응고제제에 대한 환자_대조군 연구에서 90년에 투여된 국내 혈액응고제제가 통계적으로 에이즈 감염과 유의한 연관성이 있고, 일부 감염자의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에서 국내감염자에게 많은 유형이 검출됐다는 점도 이 같은 판단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위원회는 당시 사용됐던 혈액응고제제가 남아 있지 않아 바이러스 증명이 불가능하며, 일부 병원의 경우 의무기록상 처방 상품명이 불명확해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조사는 94년에도 이뤄진 적이 있다. 혈우병 환자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 잇따라 드러나자 국립보건원 주재로 혈액제제안전성위원회를 구성, 추적에 나섰다.
당시 결론은 “혈액응고제제가 원인인 것으로 판단되나 감염원이 국내산인지, 외국산인지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울산대 의대 조영걸 교수가 “국내 혈액응고제제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재검토를 지시, 이번 조사가 이뤄지게 됐다.
문제는 이번 조사 결과가 지나치게 불명확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혈우병 환자 16명이 제기한 3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전연희 변호사는 “위원회가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모호한 표현을 해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일단 국내 혈액응고제제에 의한 감염이 일정 부분 인정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제약회사측은 “1차 조사결과와 비교해 새롭게 입증된 사실이 아무 것도 없다”고 반박했다.
출혈 시 피가 잘 멎지 않는 혈우병 환자는 국내에 2,500~3,000명이 있으며,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는 1987~1995년 25명이 발생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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