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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더 많은 여성수학자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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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더 많은 여성수학자를 기다리며

입력
200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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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품게 되는 의문점 중의 하나는 수학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위대한 여성 수학자가 있었는지 하는 점이다. 과학자 중에는 그래도 퀴리 부인이 있어 여성 과학자의 모델을 제공하지만, 교과서에 소개되는 수학자들은 남성 일색이라 여성 수학자의 상(像)을 머리 속에 그리기 힘든다. 이처럼 ‘수학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통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여성과 수학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수학사를 면밀히 연구해보면 여성 수학자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히파티아(370?∼415)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자 테온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를 도와 유클리드의 ‘원론’을 개정했으며, 당시의 유명한 수학책들에 주석을 달았다. 신플라톤주의 학자였던 그녀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강의하면서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학문의 여신인 ‘뮤즈’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아름답고 우아한 그녀에게 청혼하는 남성도 많았지만 그녀는 “나는 이미 진리와 결혼했다”고 거절하며 독신을 고집했다.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히파티아는 결국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이교(異敎)의 선포자라는 이유로 기독교인들로부터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히파티아 이후의 주목할 만한 여성 수학자로는 프랑스의 소피 제르멩(1776∼1831)을 꼽힌다. 당시 프랑스 최고의 학교인 에꼴 폴리테크닉에는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르멩은 그 학교의 수학자 라그랑주의 강의 노트를 입수해 공부했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드러내면 불리하다고 판단한 제르멩은 르 블랑(M. LeBlanc)이라는 가명으로 훌륭한 리포트를 제출하여 라그랑주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동시대의 수학자 가우스와도 가명으로 서신 교류를 했다.‘19세기의 히파티아’로 불린 제르멩은 가우스의 추천으로 사후 괴팅겐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오늘날 프랑스의 파리에는 그녀를 기리는 ‘소피 제르멩 거리(rue Sophie Germain)’가 있다.

1935년 5월5일자 뉴욕타임스에는 한 여성 수학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인슈타인의 글이 실렸다. 화제의 주인공은 독일 태생의 수학자 에미 뇌터(1882∼1935)였다. 독일 에르랑겐 대학의 수학자 막스 뇌터의 딸로 태어난 에미 뇌터는 추상대수학이라는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뇌터는 괴팅겐 대학의 강사로 임명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수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 대학의 교수인 유명한 수학자 힐베르트는 뇌터의 임명을 지지하기 위해“여기는 대학교이지 목욕탕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러시아의 수학자 소냐 코발레프스키(1850∼1891)는 히파티아, 에미 뇌터와 더불어 3대 여성 수학자로 불린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여성이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고 외국 유학도 기혼자에게만 허용됐기 때문에 코발레프스키는 유학을 가기 위한 방편으로 사랑없는 위장결혼을 했다. 코발레프스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거쳐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근대 해석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이에르슈트라스의 수제자가 되었고, 괴팅겐 대학에서 편미분방정식의 연구로 여성으로선 처음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발레프스키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바이에르슈트라스와 사제 관계이자 학문적 동지이면서 정신적 연인으로 알려져 있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과거에는 여성이 수학을 배울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학사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룬 여성 수학자의 존재는 더욱 가치있게 느껴진다. 여성이 수학자가 되기 위해 험난한 인생 역정을 겪을 필요가 없어진 이제, 점점 더 많은 여성 수학자의 이름을 접하게 되기를 바란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협찬 : 한국과학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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