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만물과 삼라만상에는 이른바 ‘순환’현상이란 것이 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찾아오고 밤이 지나면 날이 밝아온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겨울과 봄이 그 뒤를 잇는다. 달도 차면 기울고 그믐달이 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보름달이다. 이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흐름이 자연의 순환이다. 이 자연의 순환에 관한 한 ‘좋은순환’이라거나 ‘나뿐 순환’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 여름에는 해수욕을 즐기러 강이나 바다로 가면 되고 가을엔 단풍구경이 안성맞춤이다. 겨울이 오면 스키 타러 가고 봄에는 벚꽃구경이 제격이 아닐까. 이런 자연의 순환에 대하여 인간은 다만 적응하는 것일 뿐, 딱히 그 순환을 깰 수 있는 특이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허나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순환현상은 다르다. ‘무위자연’과는달리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순환에서 의도성은 어떻게 작용할까. 두루미 같은 인간이 뾰족한 병 속에 잔뜩 음식을 담아 내온다. 여우 같은 인간은 초대를 받았지만 먹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두루미 같은 인간을 초대하여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내오니 그 역시 음식을 입에 댈 수없었다. 두 사람은 한을 품은 채 서로를 노려보며 ‘칼의 노래’만을 부를뿐이다. 분명 이것은 보복의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의 정치상황은 어떤가. 박근혜 대표의 저질 패러디 사진을 청와대 직원이 홈페이지에 올리니, 한나라당은 격앙되어 어쩔 줄 모른다.얼마 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 풍자극을 연출하니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사과를 요구하는 등, 화가 나서 펄펄 뛴다. 이것이야말로 이솝도 예상치 못한 21세기 한국판 여우와 두루미의 앙숙 관계일 터이다.악순환의 고리가 무서운 것은 누구도 그 고리를 자를 수 없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보수세력에 대하여 기득권 세력이라고 폄하하니 보수성향의 시민들도 노대통령의 진보성향에 대하여 ‘낡은 진보’라고 비판한다. “장군”하면 “멍군”하는 그 다툼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노대통령이 강남 사람들과는 밥도 같이 먹지 말라고 주문하니 강남 부자들은 돈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다. 부자들이 한을 품고 돈을 쓰지 않으니, 파출부들이 할 일이 없어 고생이 막심하다. 부자들의 외부효과가 큰 것이 실감난다. 왜 이렇게 우리나라에는 ‘분노의 포도’처럼 ‘분노의 악순환’이 성행하는가. 권력부자가 된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이 여유를 갖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겠다”는 마음으로 보수세력과 강남 부자들을 껴안았더라면, 이처럼 고약한 악순환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은 호혜의 ‘선순환’으로 바뀌어야 한다. 호혜의 선순환은 까치가 장마물에 떠내려가는 개미를 구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은혜를 잊지 못한 개미는 까치를 쏘려는 사냥꾼의 발을 있는 힘을 다하여 물었다. 잘못 날아간 총알 때문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까치는 또 알로에를 구해오는 등, 개미의 중상치료에 열심이다. 지금이라도 늦지않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여우와 두루미의 관계’보다는 ‘까치와 개미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상생의 정치란 여야대표가 만나 만인 앞에서 거창하게 약속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예의를 지키는 선의의 손길이야말로 상생정치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상해 있고 회한을 곱씹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깜짝 경기부양책이 나온들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호혜의 선순환이 되면 사자도 양과 더불어 풀밭에 누어있을 수 있고 뱀도 개구리와 같이 놀 수 있다. 상호이해와 상호겸양, 상호예의로 특징지어지는 선순환의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진보와 보수도 따뜻함을 서로 나누고 2030과 6070, 386과 486도 같이 상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지금그게 ‘그림의 떡’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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