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머리채를 쥐어 뜯고 싸울 때,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의 세계를 유지시키는 암묵적이고 굳건한 ‘규칙’을 둘 중 한명이 깼기 때문이다. 친구가 교회 바자회에서 건진듯한 촌스러운 치마를 입었어도 “어머, 그거 어디서 샀니. 너~무 예쁘다”라고 호들갑을 떨어주는 게, 여자들의 세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퀸카로 살아남는 법’(원제 Mean Girls)은 그 오묘한 세계에 시선을 꽂은 영화다. 섹시한 한글번역이 눈에 띄지만 영화를 보면 퀸카, 이 영화의 표현대로라면 ‘여왕벌’이 문제가 아니라 여자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지 않고 지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물학자인 부모님 덕에 15세가 될 때까지 아프리카에서 홈스쿨로 공부하던 케이디(린제이 로한)에게 ‘수업중 화장실 가면 안된다’ 같은 학교의 룰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것도 여자들의 룰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학교의 ‘여왕벌’로 군림하는 레지나(레이첼 맥아담스)와 어울리게 된 케이디는 온갖 ‘걸들의 규칙’에 황당할 뿐이다.
‘친구의 전 남자친구와 사귀는 건 금물’ 같은 조항은 양반이다. 묶은 머리는 일주일에 한번, 링 귀고리는 금물, 청바지도 일주일에 한번 등등 온갖 자질구레한 규칙이 기다리고 있다. 어길 시, 온갖 험담과 따돌림을 감수해야 하는 여자들의 세계는 영악하고 복잡다단하고 살벌하다.
이 영화를 본 남성들은 “정말 저래?”라고 되물을 게 분명하고, 여자들은“으으. 맞아. 맞아”라며 손뼉을 칠 것이다. 물론 마음에 없는 칭찬, 험담, 편가르기, 교묘한 보복이 여자들 세계의 전부인 양 그린 점은 거슬릴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다. ‘동물의 왕국’ 버전으로 난투극까지 벌였던 여고생들이 고백의 시간 후, 서로를 용서한다는 설정이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여자들, 특히 여고생들은 기본적으로 순진하고 착하다는 판타지가 투영된 이 미지근한 결말을 보고 “어제의 적이 다시 친구가 되는 경우는 여자의 세계에서는 흔치 않은데?” 라고 말한다면, “너만 이상한 거 같은데”라고 따돌릴까?
영화는 로절린드 와이즈맨의 베스트셀러 ‘여왕벌과 여왕벌을 꿈꾸는 아이들: 당신의 딸을 파벌과 남자친구 그리고 여러가지 현실적인 청소년기의 문제로부터 도와주는 법’을 기초로 하고 있다. 15세관람가. 3일 개봉.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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