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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자유투표제 활성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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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자유투표제 활성화하자

입력
200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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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ㆍ11테러 직후 미 의회가 테러응징 결의안 채택을 추진할 때의 일이다. 부시 미 대통령에게 테러분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 결의안은 당연히 만장일치 가결이 예상됐으나 민주당 소속 바버라 리 하원의원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져 파문이 일었다. 테러에 대한 분노가 들끓던 당시의 분위기에 비추어보면 리 의원의 행위는‘반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반역자’라는 비난이 쇄도했고 심지어 살해위협까지 잇달았다. 그러나 리 의원은 “군사보복행동만으로 테러를 근절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소신 투표”라고 일축했다.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이 같은 소신투표행위가 최근 각 정당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나타날 조짐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를 보면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를 비롯 과거사 청산, 재벌기업의 출자총액 제한완화문제와 사립학교법 개정문제를 놓고 찬반논쟁이 치열하다. 초선의원 그룹과지도부, 전문가그룹간에 연일 백가쟁명을 벌이고 있다.386세대와 재야파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관료ㆍ전문가출신들은 국민정서와 경제를 고려해 개정해야한다고 맞서고 있다.

박근혜 대표의 유신체제 사과문제로 시끄러운 한나라당도 내홍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열린 연찬회에서 3김시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부 비주류와 박 대표 간에 오간 날선 공방이 오갔다. 뿐만 아니라 일부 운동권 출신 의원들은 당론과 관계없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여당이 추진중인 과거사 청산 입장에 공공연히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사태는 각 정당이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하면서 이미 예견된것이다. 당 대표가 공천권과 정치자금을 미끼로 소속의원을 좌지우지하던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정치문화가 일반화하면서 이제 지도부는 의정활동을 기능적으로 주도하는 역할만을 할 수밖에 없게 돼 버린 것이다. 때문에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지도부의 방침과 배치되는 투표행태가 종종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투표과정에서 각 당마다 꽤나 시끄러운 후유증도 불거질 게 뻔하다.

이 같은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기 위한 방책으로 의원들의 크로스보팅(자유투표제)을 활성화하는 게 어떨까 싶다. 우리국회는 이미 2002년 자유투표제를 도입했다.이에 따르면 의원들은 정당의 당론과 상관없이 신념과 소신에 따라 투표하되 지도부는 이를 트집잡아서는 안 된다. 소신투표의 결과는 의원 각자가책임지되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로부터 심판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자유투표제가 일상화돼있다. 미 의회 계간지인 ‘콩그레셔널 쿼터리’에 따르면 매년 상하원에서 이뤄진 투표 가운데 거의 절반 가까이 의원들의 자유투표가 실시됐다. 지난해의 경우 민주당 의원의 20%정도가 공화당안에, 공화당 의원의 10% 정도가 민주당안에 투표했다.

특히 1998년 10월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렸을 때 클린턴이 소속된 민주당 의원 31명이 탄핵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공화당안을 지지했을 정도다. 후보의 홍보물에는 유권자들의 판단에 참고가 되도록 재임동안 행한 주요투표행위의 결과가 낱낱이 기재되는게 관례다. 앞서의 리 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소신행동을 평가받아 거뜬히 당선했다.

우리당의원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한나라당 의원이 국가보안법폐지안에 찬성하는 식의 자유투표제가 이번 국회에서 만개하길 기대해본다.

윤승용 정치부장

aufheb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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