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경기부양을 위해 소득세율 일률 인하와 함께 특별소비세 폐지 품목을 당초 예정했던 3개에서 24개 품목으로 늘리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대대적인 감세행진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번 세제개편이 근로자나 서민의 세금을 줄여줄 것이라는 정부 발표와는 달리 실제로는 오히려 부담이 늘어나는 안이 다수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기업 과세를 투명화·선진화한 노력은 돋보이지만, 감세에 원칙이 결여돼 결국 세제만 '누더기'가 되고 내수 회복의 열쇠를 쥔 서민층 체감경기 개선에는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번 세제개편으로 총 2조2,000억원 정도의 세수감소가 예상되며, 특히 내년 한해에만 소득세율 인하로 7,000억원, 특소세 폐지로 3,000억원 등 1조원이 '구멍' 나게 돼 세수기반이 크게 약화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돈 쓸 곳은 많은데, 세수여건에 대한 치밀한 계산 없이 '땜질식 감세'를 남발하면서 재정건전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민층·근로자에게 불리한 세제 많다
우선 면세점 이하의 근로소득자가 47%에 달하는 상황에서 소득세율 1% 포인트 인하가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또 신용카드 사용금액 소득공제도 지금까지는 근로자가 본인급여의 10%를 초과해 사용한 경우 그 초과금액의 20%(500만원 한도)를 공제해주었는데, 내년부터는 최저 사용금액이 총급여의 15% 초과분으로 상향 조정된다.
재경부는 내년부터 현금영수증제 시행으로 소득공제가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사용분까지 확대됨에 따라 이같이 조정했다고 밝혔지만, 모든 현금지불에 대해 현금영수증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근로자 입장에서는 손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신용카드 사용액 중 의료비가 공제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서민들에게는 큰 타격이다.
또 지금까지 240만원 한도내에서 연금저축 불입액에 대해 소득공제되던 것이 내년부터는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불입액을 합해 240만원 한도내에서 소득공제가 된다. 연금저축에 연간 240만원, 퇴직연금에도 240만원을 불입한다면 연금 불입액은 두배가 되지만 공제폭은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부양효과 미지수, 재정 악화 우려
당정이 마련한 감세안이 과연 기대만큼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물론 대기업의 최저한세율 인하나 모회사가 전액 출자한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소득에 대해 100% 비과세하는 방안 등은 기업 의욕을 북돋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득세율 인하의 경우 우리나라는 세수에서 차지하는 소득세 비중이 미국(48%) 등 선진국과 달리 고작 26%(작년 기준)에 그치기 때문에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실질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특소세 폐지가 소비확대의 '불'을 당길 수 있을지도 의문시된다.
세금을 깎아주는 만큼 과연 세수 보전책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도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부진으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내년에 당장 1조원 정도 세수감소가 발생하면 적자국채 발행(내년)도 당초 3조원에서 5조5,00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더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재정 적자가 커지면 결국은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는 장기적으로 경제에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감세 혜택 얼마나
여당의 압력에 못이긴 정부가 소득세율 인하에 동의함에 따라 내년 샐러리맨의 근로소득세 부담이 평균 5∼10% 가량 줄어들게 됐다. 그러나 인적공제나 특별공제(의료비, 교육비 등) 등이 확대되지 않은데다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은 오히려 대폭 삭감돼, 고소득층에 비해 세율인하 혜택이 적은 중산층 이하 계층의 세부담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연봉 3,000만원 이하 계층의 세부담 감소는 10만원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1999년 이후 매년 정부가 20만원 안팎의 세금을 깎아줬던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정부는 '표준공제액'을 6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 것을 내세우지만 대상이 제한적일뿐만 아니라 혜택도 미미할 전망이다. 대부분 4인 가족의 경우 국민연금, 의료보험, 교육비 등의 연간 합계액이 100만원을 넘기 때문에, 특별공제를 포기하고 표준공제를 신청할 근로자가 없다는 게 일반적 평가이다. 또 표준공제를 선택하더라도 연봉 2,000만원 미만인 근로자의 감세 혜택은 1만6,000원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세율인하 효과만을 감안하면 세전 연봉이 8,000만원인 근로자(4인 가족 가장)의 세부담이 48만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소득공제 후 과세표준이 평균 4,8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9%-18%-27%'인 단계별 세율이 '8%-17%-26%'로 1%포인트씩 내려감에 따라 세금이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다.
또 연봉 6,000만원 근로자는 소득공제 후 과표가 3,000만원이면 올해보다 세부담이 30만원, 연봉 4,000만원 근로자(과표 2,000만원 기준)는 15만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 대폭 줄어든 것까지 감안하면 세부담 감소는 제한적이다. 실제로 연봉이 각각 8,000만원과 4,000만원이며, 신용카드 사용액이 1,500만원과 1,000만원인 근로자의 올해와 내년 세부담을 비교하면 더욱 명백해진다.
8,000만원 연봉자의 경우 신용카드 공제를 감안하지 않으면 세율 인하로 근소세가 49만원 감소하지만, 내년에 신용카드 공제가 140만원에서 60만원으로 80만원이나 감소하는 바람에 감세혜택은 26만원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연봉 4,000만원 근로자에게도 적용되는데 세율 인하만으로는 17만원이 줄어들지만,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할수록 혜택이 반감된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의료비, 학원수강료 등 특별공제 항목은 신용카드로 결제해도 혜택을 볼 수 없도록 할 예정이기 때문에, 서민·중산층이 신용카드로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일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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