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막을 내린 아테네 올림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이여! 세계인의 삶과 애환을 스포츠로 승화하고 압축시켜 보여주었기에 마치 드라마를 본 듯 잔잔한 여운을 간직하게 되는 것인가? 다들 떠나고, 올림포스에서 구경하러 내려왔던 신들마저도 구름 속 자기들거처로 돌아가고, 잠시 끊겼던 일상의 무미한 리듬이 서서히 이어지는 순간, 다시 바다를 바라보며 언덕에 홀로 선 파르테논 신전처럼 생각에 잠기게 된다.치열한 경기를 바라보다 보면 대개 어느 한 편을 응원하게 된다. 경기에 열중한 선수는 자신의 일에 몰입할 뿐이지만, 실은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심지어 회한까지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국의 선수를 응원하는 것도 우리가 그들의 몸과 혼을 빌어 경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궁선수가 마지막 활시위를 당길 때 온 세계의 시선은 힘차게 당겨져 잠시 입술에 붙어버린 팽팽한 활시위에 집중되고 이내 화살보다도 더 빨리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양궁 단체전에서 마지막으로 10점을 쏘아야만 이길 상황이었을 때 상대방 중국선수는 승리를 자신하듯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침내 만점을 쏘았을 때 카메라는 아쉽게도 더이상 흥겨워 하는 중국선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한국인들은 그 순간 벌떼가 되어 허공에 가득차는 것 같았다. 무슨 드라마가 이보다 더 사람을 열광케 할 수 있단 말인가?
스포츠와 드라마의 공통점은 그들의 클라이맥스가 역전(peripateia)에 있다는 사실이다. 탁구와 배드민턴, 유도, 태권도 등의 경기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한여름 내내 우리의 낮과 밤을 바꿔놓았지만 피곤하면서도 즐겁기만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거의 불가능과 싸우면서 이기고 더러는 패하기도 했던 것이다. 덴마크와의 여자핸드볼 경기는 패배도 또한 아름답고 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동의 드라마였다. 투혼이 살아있는 한 패배는 단지운명의 무게를 재는 제우스의 황금 저울이 한쪽으로 기운 것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스포츠가 흥분과 감동을 선사한 반면, 우리의 정치는 대통령이 극적으로 당선된 것 말고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우리 정치를 국제무대에 세우면 모두 예선 탈락이 아닐는지? 모두 운동권 출신이어서 투혼이 아주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저들의 싸움은 왜 그리도 지루한지, 그리고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무엇보다도 언제까지나 관중이 떠난 자리에서 경기를 계속할는지?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