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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범죄자와 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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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범죄자와 로또

입력
200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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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살인을 저지른 30대 남자가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돼 21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화제가 됐었다. 결국 이 복권은 거리공원에서 노숙하던 50대 남자의 주머니를 뒤져 훔친 것으로 밝혀져 당첨금은 원래 주인을 되찾게 됐다.공분을 부를만한 부당한 일을 경찰이 바로잡아 정의를 실현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 복권 당첨일인 8월 첫 주말, 영국에서는 복역중인 상습강간범이 로또 1등 당첨의 행운을 잡아 700만 파운드(약 140억원)의 돈벼락을 맞은 일로 사회가 지금껏 떠들썩하다. 경우는 다르지만, 흉악범의 로또 당첨행운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영국의 로또 행운아는 소싯적부터 강간 등 성범죄를 일삼아 감옥을 드나든 50대 죄수다. 그는 15년 전 60세 여성을 성추행한 죄로 종신형을 받았다.

범행 뒤 텔레비전 퀴즈 쇼에 출연하기 위해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가 검거됐을 정도로 사행심이 많은 인물이다. 이번에도 주말 귀휴(歸休)를 받아 교도소 밖 호스텔에 머문 틈을 이용, 여기서는 구입이 허용되는 로또 복권을 샀다.

가석방 심사를 앞둔 그는 당첨 뒤 여생을 착실하게 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정적 대중 언론이 흉악범이 엄청난 행운을 누리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고 외치고 정부 각료들도 동조, 제법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교정행정을 관장하는 내무장관은 흉악범이 이런 행운을 차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당첨금을 압수해 범죄피해자 지원기금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범죄자의 부당이득을 환수해 운용하는 이 지원기금은 아직 입법 단계지만, 소급해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죄수를 처우가 엄중한 교도소로 옮겼다.

로또 담당 문화장관도 재소자의 로또 수혜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야당은 합법적으로 구입한 복권 당첨금을 빼앗는 것은 오히려 정의에 어긋난다고 반대한다. 민간 교정 전문가들도 대중의 정서에 영합한 과잉반응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논쟁의 향방은 분명치 않지만, ‘올해의 칼럼니스트’ 데이빗 아로노비치의 논평은 명쾌하다. 복권이란 게 애초 몰가치적인 요행을 파는 것이데, 당첨자의 도덕성을 시비하는 것은 도착(倒錯)적 심리라는 것이다.

정의감을 내세우지만, 악인의 행운을 분하게 여기고 시기할 뿐이란 얘기다. 이쯤에서 우리 경찰이 살인범의 로또 행운에 의혹을 가진 동기도 궁금해진다. 복권 산 곳을 모르는 것을 의심했다지만, 패륜 흉악범의 로또 당첨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애써 정의를 실현한 공을 폄하할 뜻은 전혀 없다. 로또 행운에라도 기대려는 이들이 많은 때, 그 사회심리적 단면을 잠시 살펴보았을 뿐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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