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하면 흔히 ‘그리운 금강산’이나 ‘봉선화’ 같은 곡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선 선비들이 심신수양 삼아 즐기던 전통가곡도 있다.시조시를 조촐한 악기 반주에 얹어 부르는 느짓하고 점잖은 노래로 ‘느림의 미학’을 대표한다. 워낙 느린데다 감정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엄격하게 표현을 절제하기 때문에 요즘처럼 자극적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그저 심심하고 느려터진 노래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고요한 가운데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소리의 세계는 더없이 그윽하고 향기롭다.
그러나 이 좋은 음악이 지금은 낯선 것이 되었다. 전국의 가곡 전공자를 다 합쳐봤자 30명 남짓, 공연도 드문 편이다. 강권순(35)은 이런 가곡에 평생을 건 젊은 명인이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는 강권순을 일러 “오늘날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적은 그러나 참으로 보배로운 우리 여창가곡을 순교자적 정신과 사명감으로 지키는 소리꾼”이라고 했다.
3일 저녁 오후 7시 30분 한국문화의집(KOUS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열리는 그의 공연 ‘21세기 정가’(正歌)는 우리 전통가곡의 미래를 모색하는 무대다. 가곡이 과거의 음악에 머물지 않고 오늘을 호흡하며 미래에도 살아남을 길을 찾아 떠나는 이 모험은 전통가곡을 바탕을 근간으로 작곡ㆍ편곡된 다양한 형태의 음악과 서양악기 협연곡들을 선보인다.
여창(女唱)과 4인의 주자(대금, 첼로, 마림바, 타악기)를 위한 ‘찬기파랑가’(작곡 김대성), 인성(人聲)과 3대의 거문고, 대금, 타악기를 위한 ‘달하’(작곡 임준희), 일본작곡가 도루 야마나카의 컴퓨터음악 ‘이수대엽’, 4대의 기타 앙상블과 여창의 ‘창 내고자 2004’(작곡 정현수) 등 실험적인 작품 외에 제주민요 ‘산천초목’과 ‘봉지가’, 모음만으로 노래하는 구음(口音) 즉흥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김대성과 야마나카, 정현수의 곡은 초연이고, 판소리가 아닌 가곡 창법의구음 또한 전에 없던 것이어서 남다른 의욕이 느껴진다.
공연에 맞춰 첫 개인음반 ‘천뢰(天籟)-하늘의 소리’(2CD, C&L뮤직)도 냈다. 창작과 실험을 내세운 이번 공연과 달리 음반은 전통가곡을 원형 그대로 담았다. 수록곡은 우조 이수대엽 ‘버들은 실이 되고’ 등 CD 2장에 16곡. 그의 노래도 훌륭하지만 정재국(피리) 박용호(대금) 박문규(장구) 등 기라성 같은 명인 7명이 반주자로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가 감탄스럽다.
그는 말한다. “가곡은 어찌 보면 요즘 세태와는 맞지 않는 노래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물질문명의 한계에 부닥쳐 공허해진 정신을 추스리는 데 가곡 만한 것이 있을까요.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가곡이 전하는 느림의 미학은 더욱 절실하니까요.”
하기는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웰빙 바람에 가곡 만큼 딱 맞는 것도 없을 듯 하다. 그 깊은 세계는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한 번 빠지면 나오기 싫어질 것이다. 공연문의 (02)599-6268
/오미환기자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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