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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9>브라질-②중국특수, 축복인가 재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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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9>브라질-②중국특수, 축복인가 재앙인가

입력
200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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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손을 합쳐 세계무역의 지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얼마 전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거느리고 중국을 방문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21세기의 새로운 패권국가후보 1순위로 일컬어지는 중국과 남미의 잠재적 강국인 브라질간의 교역증대와 관련해 이 같이 큰소리를 쳤다.물론 룰라의 발언에는 그간의 우파적 정책으로 불만이 많은 국내 지지세력의 점수를 따기 위한 포퓰리즘적 수사학이 묻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단순한 엄포만은 아니다. 그 동안 멀기만 했던 브라질과 중국간의 교역이 최근 들어 활발해지면서 세계무역에 서서히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엄청난 속도의 산업화로 철광석 같은 원자재와 대두 등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필요로 하는 중국, 그리고 세계적인 자원의 보고 브라질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사실, 근 한 달에 가까웠던 이번 남미여행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바람도, 룰라 정부의 우경화도 아니고, 브라질을 포함해 남미전역에 불고 있는 ‘중국바람’이었다. 세계최대의 철광석 생산업체인 브라질의 CVRD사는 중국에 철광석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출하기 위해 최근 세계 최대 크기의 수송선을 발주했다.

그리고 아마존에 위치한 광산은 중국에서 밀려드는 주문으로 현재 24시간 가동 중이라고 한다. 중국의 경제 붐이 아마존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세계화의 위력, 중국 바람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중국특수 덕으로 지난해 브라질의 수출은 전년 대비 철광석이 85%, 대두 등 농산물이 60%이상 늘어나 심각한 내수부진에도 불구하고 경제침체를 마이너스 1%로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3.5%정도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 바람은 브라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두 수출로 경제회복의 청신호가 보이기 시작한 아르젠티나의 네스트로 키르히네르 대통령도 룰라에 뒤질세라 중국을 방문했다. 나아가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대두 농장들, 칠레와 페루의 구리 광산 등 중국 특수는 남미대륙 전체로 번져가고 있다.

이 같은 중국 바람으로 남미 국가들은 미국을 대신한 대안적인 경제파트너를 갖게 됐고, 그 결과 남미에 대해 전통적으로 미국이 행사해온 입김이 약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미국 내에서 심각하게 생겨나고 있다. 사실 남미 국가들 가운데 가장 ‘친미적’인 국가 중의 하나인 칠레가 최근 미국의 이라크 파병 압력에 끝까지 버티다 마지막에야 참전을 했는데, 이는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미의 중국 바람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자원 확보를 위한 중국의 장기적 전략이다. 중국은 현재 중국으로 실어오기 위해서는 남미의 최남단인 마젤란 해협이나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야 하는 브라질과 아르젠티나의 원자재와 식량의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데스 산맥에 거대한 터널을 뚫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거쳐 안데스산맥을 관통하여 칠레의 태평양항구로 연결하는 고속도로, 즉 일종의 판(Pan)남미고속도로를 자신들이 건설비용을 부담해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또 중국커뮤니티의 소식에 정통한 한 교포는 중국 정부가 최근 브라질 공략을 위해 브라질에 합법적인 이민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1백만 명을 보내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출국허가 없이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에 기존의 쿠바 이외에 브라질을 추가하는 등 브라질 이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으며, 그 결과 브라질 내 최대의 동양계인 일본계가 장악해온 상파울루의 아시아타운을 중국계가 하나 둘씩 먹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를 듣고 아시아타운을 방문해본 결과 정말 중국계 상호들이 새롭게 단장을 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의 경우 이미 있던 브라질 직항노선도 97년 경제위기를 이유로 폐쇄하는가 하면 김대중 전대통령이 브라질을 방문하는 등 정상외교를 벌이고도 후속조치가 전혀 없는 등 단기적 정책으로 21세기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자원 전쟁에서 자살골이나 넣고 있다고 현지 교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 전체에 불고 있는 중국 특수에 모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미가 중국의 경제에 크게 의존하면서, 이미 여러 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경제침체가 본격화할 경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남미경제에 다시 주저앉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를 넘어서 세계경제사와 남미의 역사에 밝은 학자들은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며 암울한 전망을 하고 있다. 특히 최근 서구언론이 퍼뜨리고 있는 브릭스(BRICs)논의, 즉 21세기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 부상한다는 주장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는 학자도 많았고, 이구동성으로 다른 나라는 몰라도 브라질은 아니라고 콧방귀를 뀌었다.

한 예로, 브라질 최고의 사회과학자 중의 한명으로 평가를 받고 있고 장관 등 실무경험도 풍부한 루이스 브레세르_페레라 ‘브라질 정치경제’ 편집장은 지난 수세기의 남미의 교역과 역사가 보여주듯이 중장기적으로 볼 때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는 희망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들은 브라질이 중국보다는 한국을 아시아의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 한국의 정보산업 등을 배워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협찬:삼성전자

■브라질 대표적 사회과학자 루이스 브레세르-페레라

-브라질은 계속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브라질과 한국은 1970년대 제 3세계로는 드물게 산업화에 성공해 신흥공업국으로 불리던 제 3 세계의 엘리트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한국과 달리 브라질은 경제파탄이 일상화되어 1980년부터 현재까지 연평균1% 미만의 성장을 기록해 오고 있다.

한국과 브라질이 갈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자기 나름의 경제성장모델을 유지한 반면 브라질의 엘리트들은 워싱턴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이점에서 한국도 1997년경제위기 이후 워싱턴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등 브라질식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룰라 정부는 어떠한가.

“브라질을 살리기 위한 산업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또 금리정책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1980년대 경제위기 후 브라질정부는 고금리정책을 통해 브라질 채권을 쥐고 있는 국제투기자본, 그리고 일은 하지않고 이자나 따먹고 사는 브라질 부자들을 배만 불리는 일종의 지대국가,고리대 국가가 되고 말았다.

이들의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금리를 낮춰서 생산적 자본가들의 자금부담을 덜어줘야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데, 룰라는 오히려 금리를 20%대로 올리고 말았다. 그러니 월스트리트가 룰라 보고 잘 한다고 박수를 치는 것은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래도 중국 붐으로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일시적으로는 그럴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재앙일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자원이 풍부한 나라일수록 더 못살고 낙후되어 있다. 물론 이는 그럴 나라일수록 선진국에 많이수탈을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넘어서, 환율과 관련이 있다.

자원수출국은 외화가 많이 들어오면서 인플레가 생기고 임금이 올라가는등 부작용이 생겨 환율을 낮추게 되는데, 그러면 그런 만큼 외국의 공산품은 싸지기 때문에 국내공산품은 경쟁력을 상실해 국내산업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북해에서 석유가 나오면서 석유기금을 만들어 석유판매 대금이 국내시장으로 들어와 환율 평가절상 압력을 발휘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이와 비슷한 조치를 하지 않는 한 대두와 철강 등 원자재의 수출이일시적인 경제 회복을 가져다 주겠지만 브라질의 국내제조업 등의 발전에는 오히려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척 암울하게 들린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나 자신 바로 직전의 카르도소 정권에서 과기처장관을 했지만 아주 소수파에 불과했다면, 룰라 정부와 노동당 내에는 룰라정부의 현재 노선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현 노선을 바꾸게 할수 있는 가능성이 과거보다는 크다.

외국자본이나 국내자본이나 차이가 없다는 허황된 주장, 그리고 이에 기초해 외국자본을 유치해 경제발전을 하겠다는 착각을 벗어나 다양한 사회세력이 나서서 21세기 브라질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국민적 협약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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