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으로 떠난 여행길에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56)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 선생님의 모교에서였죠. 여름방학 내내 문학기행에 나선 방문객들을 맞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는 선생님은 개학을 한 지금부터가 한가로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선생님이 가르치는 2학년의 학생은 모두 10명. 최근 2명이 전학을 왔답니다. 선생님은 오랜만에 두자리 수 학생을 가르친다며 기뻐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예전 가르쳤던 제자들의 자식들입니다. 선생님은 퇴임 전에 첫 제자의 손자까지 3대를 가르쳐 보는 게 꿈이라 했습니다.
수업이 다 끝난 오후였지만 교실에는 학생들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도 마을에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선생님이 붙들고 책을 읽히거나 운동장에서 놀게 한답니다. 선생님은 교실 창문 너머 보이는 고향마을 진메를 가리키며 그 곳에도 언제부턴가 아이들 소리가 뚝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사라진 마을로 들어가는 게 무서웠고 눈물이 나도록 슬펐다고 합니다.
어두워진 분위기를 바꾸려 섬진강으로 화제를 돌려봤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대답은 “이제는 섬진강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지금의 섬진강은 예전과 달리 많이 아프답니다. 멀쩡한 강변을 파헤쳐 시멘트로 강둑을 쌓고, 강물이 수만년을 흘러 만든 물길을 하상정리다, 뭐다, 하며 함부로 뒤틀어 놓아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답니다.
섬진강위로 놓여지는 거대한 다리들을 설명할 때 선생님의 분노는 폭발했습니다. 강물과 어울리지 않게 무조건 크게 짓는 바람에 아기자기한 섬진강의 매력을 잃고 말았답니다. 특히 하동-구례간 ‘동서화합의 다리(남도대교)’가 건설되면서 그 곱고 아름다웠던 강변의 자갈밭과 모래사장이 송두리째 쓸려 가버렸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그토록 사랑했던 강이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이제는 차라리 섬진강을 떠나고 싶답니다. 망가지는 산하를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어서 그렇답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아이들 소리가 멀어지는 섬진강, 이제 ‘섬진강 시인’마저 떠나려 합니다.
군수님, 시장님, 지사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섬진강을 살려 주십시오. 아니 섬진강을 좀 그냥 내버려둬 주십시오. ‘섬진강 시인’이 섬진강을 떠나지 않도록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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