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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의 국제논평] 中 동북공정과 '화평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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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의 국제논평] 中 동북공정과 '화평굴기'

입력
200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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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출범한 후진타오 국가주석 하의 중국 신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掘起)’라는 슬로건을 외교 정책의 기조로 표방해 왔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위압적 방법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중국을 우뚝 솟게 하겠다’는 외교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좀더 구체적으로 화평굴기 정책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개방, 개혁의 강화를 통해 국력을 신장시키는 동시에 환경, 에너지 문제 등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최소화시키며, 대외적으로는 우호, 공동이익, 공동번영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는 중국을 ‘화목한 이웃 (睦隣)’ ‘안정된 이웃 (安隣)’ 그리고 ‘부유한 이웃 (富隣)’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삼린(三隣) 정책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

분명 화평굴기는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는 중국 위협론에 대한평화공세 제스처로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한동안 중국 신 지도부의 상표처럼 인용되던 화평굴기라는 용어가 근자에 들어 퇴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후진타오 주석이 화평굴기보다는 화평발전이라는 평이한 용어의 사용을 선호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온건파 지도부의 반발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굴기라는 용어가 화산이 터진 후 산이 생겨나듯 우뚝 솟는 형국을 나타내기 때문에 화평과 굴기는 양립하기 어려우며 차라리 굴기보다는 발전이 화평에 더욱 어울린다는 천지첸 전 외교부장 같은 온건파 지도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비록 굴기라는 표현이 평화로 포장되고 있긴 하지만 국제정치의 급격한 지형 변화를 통한 중국의 패권적 부상을 걱정하는 주변국의 입장을 감안할 때 온건파의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동북공정을 둘러싼 최근 행보로 보아 중국의 외교정책이 화평발전이나 화평굴기보다는 부국강병의 팽창주의적 민족주의 노선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고구려 유적이 중국 영토에 소재하고 있고 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영토주권을 악용, 과거 고구려 역사까지도 중국의 지방사로 둔갑시켜 우리의 역사주권을 말살하려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이는 화평굴기가 아니라 강압굴기의 표상이며 중국 신 지도부가 표방하는 외교정책과 거리가 먼 것이다.

사실 중국 내부의 일부 보수파 지도자들은 화평굴기나 화평발전과 같은 화평론에 대해 다분히 냉소적 입장을 취해 왔다. 양안 문제가 첨예한 안보 사안으로 부각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일본의 대중 견제가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 한가롭게 화평론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중화민족주의를 고양하고 부국강병의 논리에 따라 중국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이 같은 고압적 민족주의를 전개할 경우, 동북아의 공동평화와 번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대목이 있다. 그것은 화평굴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지도부가 획일적, 단선적이 아니라 다원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최근의 동북공정을 중국 지도부의 일사불란한 정치공작으로 단정짓기에는 아직 이르다. 중국 내부의 흐름을 면밀히 파악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반전의 정치연합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정인의 국제논평 오늘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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