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들이 자꾸 밖으로 나가고 있어 큰일 났다고 합니다. 국내보다는 외국에다 투자를 늘리고, 멀쩡한 국내공장도 외국으로 옮기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국민소득도 감소하는 산업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죠.
국내기업이 해외생산을 위해 나가는 것을 해외직접투자라고 합니다. 결국해외직접투자 급증이 산업공동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죠. 그러나 이런 일방적 인과관계는 잘못된 시각입니다.
산업공동화란 기업의 해외투자 확대로 국내 성장기반이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해외직접투자가 산업공동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 투자해도 되는 것을, 또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해도 되는 것을 외국에서 하는 경우입니다. 해외투자가 국내투자를, 해외생산이 수출을 대체하는 것이죠.
그러나 해외직접투자가 국내 산업고도화를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비용 등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을 계속 한국에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죠. 또 해외진출은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필수코스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ㆍ기아차가 해외생산을 늘려 2010년에 연산 500만대 체제를 구축한다는 ‘글로벌 톱5 전략’을 지난 5월 발표했습니다. 중국과 미국 인도 체코 등에 ‘해외판 울산공장’이 세워져, 해외에서 만드는 일자리가 더 많아지겠죠. 그렇다 해도 이는 격려해야 할 일입니다.
전문가들의 중론은 가능성이야 있지만, 아직 산업공동화 기미는 적다는 겁니다. 해외직접투자와 산업공동화 사이에 어떤 퍼즐이 있는지, 산업공동화는 왜 일어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외직접투자의 원인
우선 현대차나 삼성전자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해외생산을 강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수출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세계적인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죠. 현지 소비자들의 기호와문화, 관습을 상품에 반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GM 폴크스바겐 BMW 등과 같은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들이 중국인 입맛에 맞는 자동차를 중국 현지에서 만들어 중국 판매망과 손잡고 팔고 있는데 현대차만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다면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기업들이 중국에다 공장 뿐 아니라 연구개발센터, 디자인센터를 만들고 중국인 기술인력을 고용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내기업이 중국에서만드는 가전제품의 경우 국내용과 브랜드는 같아도 디자인이나 기능이 다른 것이 많습니다.
두번째는 비용절감을 위한 것입니다. 보다 더 저렴한 인건비와 토지 이용료를 통해 생산원가를 줄여 국내에서 만들 때보다 경쟁력을 높여보자는 것이죠.
1980년대 중반 이후 섬유 신발 등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의 개도국 진출이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죠.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면, 임금이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건비가 생명인 노동집약적 산업은 성숙기에 들어서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보다 저렴한 노동자를 찾아 경제가 덜 발전한 나라로 옮겨가게되는 것이죠.
선진국일수록 제조업 비중이 줄어드는 탈공업화 과정을 일찍 겪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앞다퉈 중국과 동남아에 진출하는 주요 원인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밖에 기술획득이나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세계화의 명암
이처럼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은 긍정적 측면이 많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또 한 나라가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산업을 계속 쥐고 있으면 경제가 질적으로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도요타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글로벌화 전략 때문입니다. 도요타는 80년대부터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해 선진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겼습니다.
당시 일본내에서는 자동차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이전하면 공동화를 촉진한다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자동차 수출은 이후 오히려확대됐습니다. 도요타가 글로벌 브랜드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죠.
도요타가 국내생산에만 집착했다면 지금과 같이 성장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국가 경제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가발, 섬유, 신발 산업등과 같은 제조업을 아직도 움켜쥐고 있다면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도달할수 없을 겁니다.
물론 이런 과정에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노동집약적 산업이 자본집약형으로 대체될수록 제조업의 고용 창출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대기업의 글로벌화가 진전될수록 일자리가 예전처럼 늘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고용감소는 어느 정도 불가피합니다.
국제 산업경쟁력이 관건
이렇게 볼 때 밖으로 나가는 기업을 무작정 붙잡아서 될 일이 아닙니다.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우선 한국 주력산업이 효율적인 국제분업을 해야 합니다. 부가가치가 높은핵심부품이나 중간재는 국내에서 만들고, 단순부품이나 조립공정은 해외에서 하는 식입니다. 완제품이라 해도 부가가치가 낮은 것은 해외에서, 고부가가치 상품은 국내에서 만드는 식의 분업도 가능합니다.
최근 국내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어나면서, 대중국 수출도 급증했습니다. 수출품의 70%가 바로 부품소재라는 사실은 이런 측면에서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중국기업의 부품경쟁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특히 이 같은 분업화를 위해서는 국내에 기존산업을 대체하는 신산업이 자리를 잡아야 하지만, 성과가 미약합니다. 기업이 신규산업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세계화ㆍ고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여유인력을 서비스업과 같은 비제조업으로 돌려야 합니다. 90년대 전반기에 홍콩과 싱가포르는제조업 비중이 하락했지만, 국민소득은 2만달러로 상승했습니다.
금융산업, 지식산업 등 산업구조 고도화에 성공한 덕택이죠. 그러나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음식 숙박업 등과 같은 저부가 서비스업만 늘고 있어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국내기업이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산업공동화가 발생하는 것은아니지만,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성장기반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해외진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자칫 밖으로 나가기만 하고 국내에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지는 상황이올 수 있습니다. 또 장기적으로 볼 때 밖으로 나가야 할 기업이지만, 과도한 노사분규와 규제를 피해 해외이전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것도 문제이겠죠.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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