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회계위반 사태가 감독당국과 시장의 대립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급기야 검사 과정에서 입수한 문건까지 공개하며 조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나섰고, 시장을 등에 업은 국민은행은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발끈한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김중회 부원장은 30일 오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청, 국민은행 측이 사전에 회계기준 위배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관련 문서를 공개했다. "객관적으로 검사하고 투명한 절차로 제재한 사항에 대해 '신관치' '은행장 흔들기'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관련 문서를 공개하기로 했다"는 설명이었다. 금감원이 피감기관에 대한 검사 과정에서 입수한 문건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금감원이 이날 공개한 문건은 '국민카드 합병 관련 합병세무 절세전략 보고'라는 제목의 은행 내부문서. 문건은 합병 회계처리와 관련해 '기업회계기준에 위배될 수 있다'는 삼일회계법인의 검토 의견과 함께, 국세청 사전 질의와 관련해 '간접적 근거 자료로만 활용할 수 있을 뿐'이라는 자체 견해를 적고 있다. 이 문건에는 은행장, 부행장, 상근감사위원, 팀장 등 모두 4명이 서명을 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간부회의 자리를 통해 "금융감독당국과 정부는 정부 지분이 없는 일반 시중은행 인사에 간섭할 추호의 의사가 없으며, 모든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법규에 따라 동등하게 취급될 것"이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시장-국민은행 연합군의 공세
국민은행과 시장 참가자들은 '반 금융당국 전선'을 구축한 모양새다. 외국인,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은 "국민은행의 회계 처리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 목소리를 내며 국민은행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내 최대 법무법인인 '김&장'은 최근 국민은행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의견서에서 "은행측이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의 의견을 참조하고 국세청의 유권해석까지 받는 등 절차를 취한 점을 고려하면 중과실은 물론이고 단순 과실로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외국인 대주주들도 금융 당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금감원 발표 직후 캐피털 그룹 등 10여곳의 국민은행 외국인 주주들은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의 주재로 컨퍼런스 콜을 갖고 정부의 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성토했다. 특히 일부 투자자들은 금감원에 항의를 하거나 지분을 모아 행장 선임 주총에서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리한 여론이 조성되자 그동안 말을 아끼던 김정태 행장도 언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대응을 시작했다. 김 행장은 "대통령도 6월 금융기관장 오찬 모임에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선의를 갖고 내린 판단 등 허용될 수 있는 오류는 면책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특히 회계 처리 이전에 회계법인 법무법인 국세청 등에게서 문제가 없다는 자문까지 받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정부 조치의 부당성을 피력했다.
양측의 대립이 일단락될 시점은 9월10일 열릴 금감위 전체회의. 하지만 금융 당국이 시장의 힘에 밀려 결과를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결국 법정 소송까지 비화하는 등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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