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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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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출간

입력
2004.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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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 최종 합격자는 대개 30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시험은 합격자 발표로 끝난 게 아니었다. 더 이상 탈락은 없지만, ‘책문(策問)’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특히 전시는 임금이 직접 주관했다. 따라서 책문은 관리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라기 보다 왕이 고민거리로 안고 있는 국가문제, 정치현안을 이제 막 관리로 세상에 첫 발 내딛는 패기만만한 청년 지식인들에게 묻는 자리였다. “그대가 왕이나 혹 재상이라면, 이 난국을 어떻게 풀겠는가?”

질문은 정치뿐 아니라 외교와 군사, 경제와 사회, 문화와 교육, 풍속 등 나라살림 전반에 걸쳐 있었다. 바늘구멍 같은 ‘고시’를 통과한 젊은이들은 본 시험보다 더 떨리는 손으로,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임금이나 집사에게 소견을 내놓았다.

세종 때부터 광해군 시기까지 과거시험에 나온 여러 편의 책문과 그 답안인 대책(對策)의 내용을 김태완씨가 우리말로 옮겨 소개하고 해설까지 붙인 ‘책문-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소나무 발행)가 나왔다. 당시의 국사와 시정에 대한 고민, 문제를 푸는 젊은이들의 혜안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1611년(광해군 3년) 별시문과에서 광해군이 물었다. “당장 시급하게 힘써야 할 것으로 무엇이 있겠는가?” 왕의 생모인 공빈 김씨에게 왕후의 존호를 올리려는 이이첨을 고발하기로 작심하고 선비 이숙영은 질문의 요지에서 벗어나 “척족의 횡포와 후궁의 아첨을 뿌리쳐야 한다”고 강조한 뒤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는 것을 대략 말씀드린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자기 수양에 깊이 뜻을 두시되, 자만을 심각하게 경계하십시오”라고 기개 있게 나무랐다.

중종 2년 문과시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는 무엇인가”라는책문에 권벌은 “군주는… 마음이 싹트기 전에 간직하고 기르며, 싹텄을 때 반성하고 살펴, 사물과 몸에 예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쉬울 때 어려움을 생각하며 작은 일에서 시작해 큰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시작할 때는 마칠 때를 생각하고, 시작을 잘 했으면 끝마무리도 잘해야 합니다”며 흐지부지한 개혁정치의 폐부를 찔렀다. 외교관에게는 말재주보다 덕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학문의 진리탐구나 인재선발과는 거리가 먼 교육ㆍ과거제도의 타락을 꼬집는 대책도 있다.

1447년 세종 29년 문과중시의 책문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사육신이 된 성삼문, 반대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가담해 영의정까지 오른 신숙주, 외직에 있어 수양대군 복권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당대의 문장가 이석형이 한자리에서 책문을 보았다.

당시 최종 합격한 20명의 대책은 하도 뛰어나 1등만 8명 나왔고, 그 8명이 재시험을 보는 상황이었다.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을 묻자 성삼문은 “마음이 정치의 근본이고 법은 정치의 도구”라고 전제, “군주가 먼저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신숙주는 “적합한 인재를 얻어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답을 냈다. 젊은 시절의 대책에서 이미 그들의 엇갈린 운명이 어른거리고 있었던 셈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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